무료한 건 무료입니다만?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침이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그리고 하루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애쓴다. 그렇게 애쓴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돌아올 수 없는 오늘에게 물어본다. "오늘. 어땠나요?"
대답할 수 없는 오늘은 어제의 눈치를 보고 내일에게 대답을 떠넘기지. 참으로 무책임하게도 말이야.
아니, 물어본 내가 무책임한 거지 뭐-
비밀 많은 잠자리가 제 갈 길을 알려주지 않듯. 소문 무성한 매미가 제 이야기 감추려 소리 내듯.
각자의 계절에 찾아오는 상징적인 것들이 있다. 걸음을 멈춰 커다란 나무를 집중해서 바라보면 매미가 참 많았다. 잠자리를 이기고 단연코 여름을 상징하는 1등 곤충이 된 매미는 뜨거운 태양 아래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그런 매미 소리와 함께 창가 맨 끝줄에 나무책상에 매달린 문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더위에 약한 문수.
그렇다고 추위에 강한 건 아니지만 극도로 여름을 싫어한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수는 그런 문수가 이해될 수 없었고, 문수 또한 이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이수를 이해하기보다 무더운 여름 자체가 더 힘들었다. 묘하게 들려오는 아지랑이 소리는 더위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효과음이다. 거기에 화룡정점의 매미까지. 문수는 문득 궁금했다. 혹시 매미도 더워서 저러는 걸까?
천장에 붙어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를 따라 빙글빙글 몇 바퀴를 돌며 찬바람 풀충전을 하고 이수를 향해 달려갔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풀충전했던 시원한 바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또르륵-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는 땀을 손바닥으로 때려잡고 어김없이 이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매미는 왜 저렇게 우는 거야?!"
"매미한테 물어봐."
그렇다. 매미한테 물어봐야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짝짓기를 위해 운다고는 알고 있지만 뭐라고 외치는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아... 그렇구나."
외마디 짧은 탄성으로 문수는 터벅터벅-돌아갔다. 여름에 약한 문수는 충전이 필요했다. 다시 돌아간 나무책상에 기대어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더위에 지쳐 '무기력'이 녹아 몇 개의 자음과 모음이 증발하고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무료'만 남더라. 문수는 무료했다. 더 이상 호기심도 상상력도 발현되지 않았다. 경쾌하게 울려대던 종소리 마저 축축-늘어졌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오늘따라 조용한 문수가 조금은 어색했는지 이수가 말을 걸었다.
"어디 아프냐?"
"아니... 더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예상 답안이었으니까.
"무료해... 더워서 그런가..."
"더운 거랑 무료한 거랑 뭔 상관이야. 그냥 더위 먹은 거지."
딱 잘라 말해주는 이수를 힐끗-보는 문수.
"더위가 무료라서 그래..."
"당연하지. 그럼 누가 더위를 돈 주고 사겠냐."
'흠칫-' 문수는 말장난에 받아쳐주는 이수가 조금 신기했다. 한번 더 살짝 던져보는 문수.
"무료한 하루구만..."
"그것도 무료라서 그래. 하루가 무료라서."
"!?"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지불을 해야 할 대상도 법적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하루에 돈보다 더 한 가치를 두려 한다. 어쩌면 하루가 무료라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서. 각각의 삶이 배경이나 분위기는 다를 수 있겠지만 24시간이라는 하루는 부정할 수 없이 똑같다. 이수의 말에 문수는 무료함이 달아났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수가 문수를 깨워주는 날도-
"그럼 하루가 유료라면 우린 무료함을 못 느낄까?"
"너 돈 얼마 있는데?"
주섬주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짤랑거리는 동전 몇 개를 꺼내올리는 문수.
"200원?"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닌 이수. 이수의 농담 따먹기도 여기까지였나 보다. 아무 말 없이 한숨 한번 쉬고 각자의 집으로 갈라졌다. 그런 이수의 뒷모습과 동전을 번갈아 보는 문수. 피식-한번 웃어 보이더니.
"이수야!"
이수를 향해 100원을 던졌다.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100원을 받아내고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문수를 바라봤다.
"입금완료."
문수는 하루를 이수와 함께 나눠 계산했다. 어쩌면 우리도 무료라고 생각했던 하루를 무료하게만 보내고 있지 않는지. 혹은 너무 유료 하게 보내려고 한건 아닌지.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번갈아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소중한 하루라는 것을-
잠자리가 모기를 이긴단다.
집에 잠자리를 키워야 하나.
혼자보단 둘이서 싸우면 승률이 올라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