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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Sep 24. 2024

레고왕

소중한 나의 순수. Let's go!

돈 빼고 모으는 걸 잘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건 차곡차곡 모아두고 시간이 지난 뒤 그윽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그런 아련한 추억의 물건들이 있다. 그것이 돈이 되어버린 지금의 난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인지, 잊어버린 것인지. 다시 찾아야 하는 건지, 다시 기억해 꺼내야기만 하면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참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갖고 싶은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엄마손 잡고 고르던 작은 레고는 쌓이고 쌓여 큰 통에 가득 담겼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면... 내 인생 후회 중 하나이다. 어쩌겠는가. (모으는 거 잘한 다는 거 취소.)


해를 거듭할수록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순수함에 속상한 마음만 한가득인 요즘. 

길을 가다 보이는 레고 매장은 언제나 동심과 순수함을 불러 주지만, 씁쓸함에 눈에 담고 나오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찾아보고 싶었다. 다소 충동적일 수는 있지만 가장 저렴한 작은 레고를 구매하게 되었다.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슬펐다. 이 작은 것 하나에 울고 웃었던 어린 시절이 스쳐서일까. 그렇게 작은 레고를 들고 카페에 들어가 레고를 조립하며 다른 잡생각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순수함을 찾아보기 위한 다소 충동적 행동. 추억 조립 Let's go!


이게 뭐라고 참. 

작은 만큼 조립의 속도는 빨랐고 완성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더군다나 요즘 레고는 설명서가 아주 친절하게 되어있는 만큼 조립속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져본 레고인 만큼 작은 블록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맞아 맞아 이런 모양도 있었더랬지.' 하며 추억에 허우적거리며 물살 따라 흘러가게 되었다. 

조각을 맞춰가며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처음 만든 레고처럼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한 모양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는 나의 소중한 순수함과 추억들. 작지만 아늑한 섬에 도착한 나는 이 각도 저 각도 방향을 틀어가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기억저장 중이었다.


뿌듯함과 후회 그 어디 사이쯤

더욱 무서운 건 계속해서 사고 싶어질 나의 마음. 그래서 사지 않으려 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순수함을 외면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완성된 레고를 굴려가며 나름의 상상을 동원하여 스토리도 넣어주고 이름도 지어주니 친구가 된 느낌도 들고? 

멈추지 않고 레고를 지금까지 모으고 간직했다면 레고왕이 되어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토록 좋아했던 것인데 지금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흔적 없이 사라진 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리도 잔상 없이 숨어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저 작은 레고 하나에 돈가스를 먹을 수 있고 커피가 몇 잔인지 계산하는 나의 부끄러운 생각을 지워가며 집으로 고스란히 가져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어떻게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레고를 살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자주 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능하다면 순수함을 손 닿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두고 싶다. 잃어버린 거였다면 고개 돌려 찾을 수 있는 거리에. 잊어버린 거였다면 눈만 감아도 보이는 곳에. 레고왕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의 순수함은 어디 숨어있나요?



교감하고 공감하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더라.
온전하진 못해도 남아 준
나의 순수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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