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제에 무슨 주제를
바쁘단 핑계로 완성시키지 못한 문장들에게 사과를.
정신없단 이유로 써 내려가지 못한 글들에게도 심심한 사과를.
빙빙-돌아가는 선풍기 날개 앞에서 새로 태어나는 글들은 훨훨-'옆으로' '아래로' 이 세상에 빛을 보며 기뻐하겠지만 묵혀 둔 글들의 서운함은 어찌하리오. (묵은지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sorry...)
잠시 꾸준하지 못했던 내가 무슨 주제로 주제를 정하겠어. 모든 분야에서 부지런하고 싶었는데, 어쩌겠어.
반성하는 마음으로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대신한다.
작년 이 맘때쯤이었나. 공연 의상이 정장이었었다. 뜨거운 여름에 두꺼운 정장과 따사로운 조명까지 더해졌다. 공연 내내 수많은 땀이 흘렀고, 보는 사람들 마다 안타까워했었다.
이번 공연은 더 두꺼웠다. 저번 공연장보다 천장도 낮았다. 따사로운 조명은 뜨거웠고, 땀은 폭발했다. 공연 내내 공들여했던 메이크업은 녹아 눈으로 들어가 따가움을 참아가며 연기를 했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배역은 나이가 좀 들어 보여야 했었다. 고전작품이라고 이해를 한다고 한들, 극 중 내 딸이 시집을 갈 나이라는데... 어찌 맨얼굴로 할 수 있겠는가. 주름도 그리고 눈썹이며 머리며 흰색 칠을 하고 드믄드믄 그린 검버섯으로 변해본다. 중간에 잠깐 퇴장하는 거 말고는 끊임없이 무대 위에 있었던 탓에 땀이 마를 틈도 없이 극이 진행된다. (덕분에 얻은 강제 다이어트...^^)
지원했던 배역이 아니었던 터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 또한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며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시간은 흐르고 무대의 조명은 꺼진다. 그리고 박수를 받고 돌아서서 분장을 지우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있다.
끝난 공연에 대한 아쉬움이 있느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끝난 공연에 대한 후련함이 있느냐 물어본다면, 그것 또한 당연히.
그것들 중 아쉬운 것이 크냐 후련함 것이 크냐에 비중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건 비밀로 남겨두겠다. 조금 더 지나 봐야 알 것 같기도 해서.
달콤한 일주일의 휴식이 찾아왔다. 며칠은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고 또 며칠은 집에서 팝콘에 영화를 볼 거라는 즐거운 계획으로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나를 찾는 시간에 글을 끄적여보겠다며 호기롭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이다.
그러던 중 어제의 하루를 정리해 보고자 멍-하니 머릿속으로 지난 시간들을 쪼개봤다.
어제의 나는... 이것저것 하다 다음 작품을 위해 관련 자료들과 관련 영화나 책들을 봤다.
다소 무겁지만 꼭 필요한 이슈들을 소재로 한 비슷한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고 답답함에 한숨만 푹푹-내쉬다 계획에 없던 혼술을 하고 말았다. 술을 잘 못하는 탓에 아주 소량이었지만, 짧지만 오랜만에 마셔보는 술은 여전히 쓰디쓰다. 인생보다 쓰겠냐라고 우스운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술이 더 쓰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기까지 각자 배우들만의 회복과 준비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느꼈는데, 막상 주어진 시간에 제대로 쉬고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만 던지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아이러니함 투성인 것 같다. 쉬는 것도 잘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등산을 가고 싶다 생각했는데 너무 덥다. 등산은 좋아하지만 더운 건 싫으니 이거 어찌해야 하나.
혼자의 시간을 좋아하지만 혼자 가자니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니 어찌해야 하나.
혼자서도 잘 다녔던 집 뒤에 가까운 산인데 오늘은 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주제 없는 글의 장점은 오직 나를 위함이다.
주절주절-혼자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생각을 정리할 수 도 있다. 타인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 없이 온전한 나를 위한 글. 이것에 주제 없는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오늘은 이 정도 정리 하고 밥이나 먹어야지. 결국 주제 없는 글의 마무리는 배고픔에서 정리된다.
먹는 것도 충전이니까.
난 지금 충전의 일주일을 보내고 있으니까.
내 주제에 주제를 정하기엔 재주가 부족해서
제가 주로 생각나는 글을 끄적인 하루.
썩- 나쁘지 않은 하루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