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났던 것처럼.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단순한 이유에서부터 싫어하는 명분을 하나둘씩 만들기 시작한 건 아닐까? 꽉꽉 막히는 도로를 뚫고 가는 시골의 할머니댁 화장실이 불편했다. 그리고 어릴 때 무서워하던 큰 개도 한몫했고. 그리고 첫 만남은 하하 호호-웃으며 안부 묻는 모습은 좋았으나 결국은 술 한잔 드시고 싸우는 어른들의 모습. 어쩌면 그때부터 연달아 술이라는 게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지도.(단순하지 않구나-)
1년에 2번씩 찾아오는 명절의 추억은 긍정보단 부정이 아슬아슬하게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부정보단 긍정이 좋으니, 좋았던 점을 생각해 보련다.
꽉꽉 막히는 도로의 중간에 먹을 수 있는 휴게소의 별미들.
큰 개는 무서웠으나 그 큰 개가 낳은 강아지들의 귀여움.
잠시나마 들리던 웃음소리 너머로 쏟아지는 용돈들.
지하암반수가 식혜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던 무한 리필 식혜.
억지로 생각을 쥐어짜 내는 것보단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3:4로 긍정이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긍정' 축하드립니다!)
나 명절 좋아했네?
그때부터 명절은 나에게 꼭 필요한 날이었고, 비로소 가족이라는 공동체적 운명의 책임감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날이었다. 함께 먹을 밥상이 있다는 게 어딘가. 셋이 모여 함께 볼 수 있는 TV가 있다는 게 어딘가.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찾아오는 씁쓸함은 어찌 막을 수가 없었다. 좁디좁은 방에서 테트리스 하듯 알맞게 누워 컴컴한 적막 속에 몇 번이고 다짐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하지만 그 다짐은 서울 오는 기차에 두고 내리나 보다....... 1년에 2번씩 하는 다짐 덕에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름의 긍정파워로 살아가는 나 스스로에게도 소심한 박수를 두어 번 치고 살아가고 있을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펑-)
이후 명절이 되어도 누나는 나오지 못했고, 전화나 영상으로만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3명이었을 때 좁게만 느껴지던 원룸에서 2명이라고 조금 더 넓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색하던 마스크가 익숙해지고, 익숙하던 마스크를 벗어 어색해진 맨얼굴이 또다시 익숙해질 때쯤. 누나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누나가 나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찍이 표를 예매했다. 안 올 것만 같던 가을과 추석이 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이 어디 있을까. KTX 안에 내려가는 동안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누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종종 센터에서 보내준 사진으로 보긴 했으나, 실제로 보는 건 또 다를 수도 있으니-
어떻게 인사해야 할까. 포옹을 할까? 아니면 그냥 아무 일 없었던 듯 인사할까. 어제 본 것처럼?
고민하다 접고, 고민하다 접고를 반복하다 도착해 버린 집 문 앞.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TV 앞에 앉아 있는 누나를 보고 인사했다.
잘 지냈어?
뭐지... 이 어색한 첫인사는?
이러고도 '배우'인가........................(서울 가면 "잘 지냈어?" 연습할 판.)
어!
웃으며 나온 누나의 대답에서 잠시 얼었던 어색함이 풀리고는 엄마도 웃고 나도 웃고 누나도 웃었다.
그리고 정말 보통의 명절처럼 자연스럽게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입고 싱크대 위에 올려져 있는 전을 손으로 집어 와구와구-한가득 입안에 채워 씻으려 갔다.
잠시 만나지 못했던 몇 년의 세월이 무색했던 건 아니다. 누나의 모습에서 보였고, 엄마의 모습에서도 보였다. 그나마도 건강이 회복된 엄마의 모습이라 다행이지만, 요즘 늘어나는 주름에 꽂혀 있는 엄마의 한숨 섞인 투정은 빈손으로 온 아들이 피부에 좋다는 영양제 주문으로 위로했더랬다.
공연연습이 있어서 오래 있진 못했지만,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누나와 엄마. 그리고 나. 세 식구가 보낸 이번 추석을 돌이켜 오늘 생각해 보니 꽤나 즐거웠고 풍족했다. 어쩌면 이보다 더 나은 삶과 가족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집도 이렇게 명절을 보냈노라, 하고 위안이나 안도를 주고자 하는 말들은 아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난 목구멍에서 잘 삼켜내는 편이기에- (그래서 요즘 항상 배부름.)
대본을 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번 명절을 기억하며 기록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누나와의 순간을 지난날 다시 보면 추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지고, 조금 더 건강이 걱정스러워지고, 조금 더 살도 찌고, 조금 더 나이도 먹은 누나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하나뿐인 누나.
바라는 건데,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시간이라는 게 누나에게는 조금은 천천히 혹은 느리게 흘러가길 바란다. 급할 거 없지 않은가. 내가 대신 조금 조급해 볼 테니.
요란스럽지 않았으나, 그리움은 글로 적어 수다스럽게 담아두려 한다.
비가 그치고 가을이 왔다 생각했는데,
가을이 오고 비가 오니 이제야 비로소 '가을비' 같더라.
아침부터 차오르는 햇빛마저 '가을햇살'이라 불러주마.
시원한 '가을바람' 데려와주길.
비, 햇살, 바람에게 이름 붙여주면 좋아할 수도 있잖아?
혹시나 말이야. 아주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