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작 Nov 14. 2023

천장아 그리웠다.

당신도 나를 그리워했길.

제법 코끝 시린 계절이 왔기에 휴식하던 보일러를 살포시 가동해 보았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펑-펑- 거리는 기침 소리에 짧은 인사 하고 올 겨울도 잘 부탁드리며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가열차게 열정 불태워주길.


 



공연이 막을 내리고 나의 가장 상위계층 연기였던 왕(문종)의 생활도 끝이 났다. 기간 내내 상투를 틀고 영혼까지 끌어올리는 탓에 평소보다 더 열린 머리카락 성장판을 보고는 누군가 내 팔다리를 잡고 늘려준다면 이라는 허튼 생각에 헛웃음 지어본다.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에 외면받던 나의 수면시간들과 여가시간들. 바쁜 게 좋은 거라지만 행복한 삶을 꿈꾸는 나에게 다양한 시간들을 누리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삶 지표이었다.

그래서 먼저 수면시간에게 10시간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24시간 중 10시간이나 주다니. (쉿-! 다른 시간들에게는 비밀로 하길-)


기브 앤 테이크.

맑은 정신퉁퉁 부어버린 얼굴선물 받았다. 안 주어도 되는 선물에 억지미소로 나 또한 감사를 전하며.

그리고는 냉장고 털이. 콩나물 국을 끓이고, 밥을 하고 집안 정리를 조금씩 했다. 일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건 집안일.


'휴- 집이 안 커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힘들뻔했네. 천천히 성공해야지.(뭐래)'


이불 위가 아닌 바닥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멍하니 보았다. 아차-! 잊고 있었다. 왜 그런 시간들이 있지 않는가. 나른한 몸을 따끈해진 바닥에 전체적으로 밀착시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 특별히 고민을 하는 시간도 아니고, 천장이나 벽지의 무늬를 살펴보는 시간들이 아니다. 그냥 그런 시간들. 포근하게 전달되는 바닥의 온기가 등을 토닥이며, 수고했다는 위로를 받고 팔뚝이나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장판의 알 수 없는 폭신함이 잠들지 않게 적당한 자극을 주며, 길지는 않지만 편안함을 준다. 그리웠다. 천장씨. 당신도 나와 마주치는 이 시간이 그리웠겠지요? (어서 그렇다고 말해줘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오랜 친구 같은 천장은 이런 시간에 가장 필요한 존재이다.


'휴-집 뚜껑이 안 열려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이런 시간을 못 누릴 뻔했네. 천천히 성공해야지.(뭐래 자꾸)'


가을이랑 손잡고 시작해서 겨울에게 건네받고 손잡으니, 살짝 느껴지는 냉기에 정신이 번쩍-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대본을 책꽂이에 넣으며 이렇게 또 마무리되었음을 느낀다. 언제나 공연이 끝나면 찾아오는 아쉬움과 후련함. 그리고 앞으로 더 성장하고 싶은 나의 모습들을 천장에 그려본다. 도화지도 되어주고 말동무도 되어주고, 정리함도 되어주니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 다시 바빠지는 날들이 오면 마주하는 날이 줄어들겠지만, 종종 마주하는 그 시간만큼은 서로에게 진심이길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

천장과 나는 기적을 행하고 있다 믿고 있으니, 오늘 아침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또다시 인생의 기적을 맛보고 끓여두웠던 콩나물국을 먹으려 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당신과의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짧게 마무리한다.




웃음꽃 뒤에 들려오는 슬픔꽃이
웃음꽃을 보고 웃길.
슬픔꽃 뒤에 들려오는 웃음꽃이
슬픔꽃을 보고 함께 슬퍼해주길.
그리고 다시 웃길.
그런 삶을 살아가길. 꽃처럼. 아름답고, 사랑받으며-
작가의 이전글 요란스럽지 않게:그리움은 숨기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