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화지

낙서의 가치있는 시간

by 진작

가을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나서야

돌아오지 않을 봄을 정리할 수 있는 확신이 생겼다.


올해 봄.

형편없는 낙서그림이라 불러주는 칭찬에

한참 자신감이 올라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낙서에서 멈추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 낙서는 나에게 무의미한 시간들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고,

버리지 못한 지난 낙서들이 책꽂이 사이에 쌓여있었다.


겹겹이 쌓여있는 낙서들이 지저분해 보였다.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낙서 중 가장 괜찮은 낙서를 3장만 두고

나머지는 다 버릴까.


낙서들이 상처 받지 않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결심했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버리자!'

잘 가...
잘 가.......
잘 가.............



한 움큼 낙서 된 .도화지를 들고 거실로 나가려는데

반대편 책꽂이에 쌓여있던 무수히 많이 남은

하얀 .도화지들이 작별인사를 고했다.


이건 마치 슬픈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나는 마치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

세상 나쁜 악당이 되어있었다.

악당역에 캐스팅되다니. 그것도 좋지.


"쉿-!"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 독한 마음으로

낙서 뭉치를 현관문 앞에 두고 방으로 돌아왔다.


행복한 시간 다 쓰더니
이제 와서 버리겠다?

"그건 지난 시간들이잖아요. 지금 저 낙서들을 본다고 행복하진 않아요."


그럼 저 낙서를 보면 불행하니?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지난 낙서를 지금 와서 본다고

불행이 몰려온다거나 우울해지는 건 아니다.

부적도 아니고.

그저 내가 했던 지난 낙서 들일뿐. 말 나온 김에 물어봤다.


"그럼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행복..................??
행복하지. 작품이 된 거잖아.
그때는 그리면서 행복했잖아?
시간이 지났다고 그때 그 행복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희미해지는 것뿐.
남아있잖아.
기억이.
응?



꼭... 작품이라고 말해줘서 다시 가져온 건 아니다.

현관문에 있던 낙서 뭉치를 다시 들고 방 한쪽에 넓게 펼쳤다.

낙서 하나하나를 볼... 아니,

작품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한 개의 계절을 뛰어넘은 것뿐인데,

희미해져 가는 것들이 아쉬웠지만

아주 잠시 올봄을 다시 한번 그려보며 바라본다.




나와 다른 봄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도

단 며칠의 행복이 낙서가 아닌 가치 있는 그림으로 남기를.


p.s 다음에 다시 행복하게 되면, 그때 또 만나요. 작품 만들어드릴게요.


'쓱싹쓱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