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배우 원식

많이 컸다. 으른 원식

by 진작

회에는 소주 란다.

믿을 수 없다.

회에는 생수가 찰떡궁합이었으면 좋겠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때,

한 점 한 점 정성스럽게 쌈 싸 먹었던 회가 가장 먼저 생각났으면 좋으련만...

아픈 머리 부여잡고,

나는 아직 멀었구나 라는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며

몇 병을 마셨는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무명배우인 나는 소주가 싫다.

맛없는 소주를 억지로 참아가며 먹는 술자리는 더 싫다. 그래서 아직 무명인것가.

여기! 변명 같은 옹졸한 핑계 하나 추가요.


배우를 한다거나

연극을 한다거나

예술을 한다거나

영화를 한다거나


어디를 가도 주량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주량: 상황에 따라 측정기준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불분명한 수치.


대부분 사람들의 기준은 소주에 맞춰져 있다.


"잘 못 마셔요. 1병 반?
소주보다 맥주를 선호하는 편이라..."

라고 말하면,

'생각보다 잘 마시네요.'라는 뜻밖의 칭찬을 받는다.

세상 못 마시게 생겼나 보다. 인정.


대학시절 나는 촉망받던 무명배우 이면서,

술을 거의 안 하는 바른생활 무명배우이었다.


친한 동기형들과 한잔 할 때면

언제나 알콜향이 거의 없는 달달한 맥주를 마셨고,

그런 나를 보면서 맥주소주를 타는 장난을 치곤 했다.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즐거웠기에,

장난스럽게 타 주던 을 패기롭게 벌컥벌컥 마셔댔다.

형들은 그때부터 나의 잠재력을 알아본 것일까.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는 형들과 함께 같은 종류의 술을 마시고 있다.

지금의 1병 반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맛있는 안주들이 잊혀진 것일까.


며칠 전.

회에 소주 한잔 하고 시원한 가을바람맞으며

다가올 숙취는 생각지도 못한 채

기분 좋은 취기 정도로 신나게 걷고 있었다.


"원식이 많이 컸네. 소주도 마시고."

"그러게요. 진짜 많이 늘었다."

"으른이네 으른이야."


*으른: 10년 사이 최소 소주 1병 이상 주량이 늘게 되면 받을 수 있는 칭송. 정확한 발음으로는 어른.


30대 중반.
무명 배우인 나는 '으른'이 되어 있었다.


*어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으른'이 된 무명 배우는 이제 '어른'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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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풀 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