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살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온 나의 친구들은 알 것이다.
저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외쳐대던 좌우명이란 것을.
초등학교 때 저 좌우명을 친구들에게 처음 말했다.
그때는 '자유'라는 것에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지 몰랐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자유'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맘 편한 인생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중학교를 진학했을 때,
동네에서 규율이 가장 엄격한 학교로 가게 되었다.
친구들은 자유를 외쳐대던 내가 그런 학교에 가게 되니 제법 웃겼나 보다. 그런 엄격한 규율에서 내가 원하던 자유는 책가방 가장 아래쪽에 꾹꾹-눌러놓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했을 때,
꾹꾹- 눌러놓았던 자유를 폭발시킬 수 있을만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는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자유란 무엇인가 보여줄 수 있게 될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의 꽃 중에 꽃. 동아리라는 곳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선후배 문화가 꽉 잡힌 곳이었다. 그렇게 다시 책가방을 꺼내 가장 아래쪽에 눌러 담기 시작했다.
대학을 진학했을 때,
책가방 속에 캠퍼스의 낭만과 함께 자유를 눌러 담았다.
(요즘은 자유롭다고 한다. 부럽다고 한다.)
그렇게 군대를 갔을 때,
남들보다 더 훈련강도가 높은 부대로 가게 되었다.
자유와 거리가 상당히 먼 곳이었기에 이곳에서는 자유를 외치거나 바라지는 않았다.
나는 상황에 맞춰 잘 적응하는 카멜레온 같은 무명배우이니까.
지금도 저 이야기들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단골 주제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어릴 때부터 자유를 외치는 녀석이 초중고대 모든 학창 시절을 억압과 엄격한 규율 속에서 보내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이야기 이긴 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든 선택은 내가 했더라.
그 중학교를 진학한 것도.
그 동아리에 들어간 것도.
그 전공을 선택한 것도.
그 부대를 가게 된 것도.
정작 선택한 건 나 자신이었다.
(다 재밌고 행복했음................)
(할 말 없음.............................)
엄니와 함께 텅 빈 카페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보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교과서적인 흐름으로 내 나이에 나올 법한 결혼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물 흐르듯한 전개였지만 그 물은 저 높은 곳에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폭포 같았으며,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가 던진 낙차 큰 변화구 와도 같았다.
모름지기 어릴 때부터 자유를 좌우명 삼았던 자라면.
훌륭한 무명배우 라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애드리브 정도... 가볍게 칠 줄 알아야 하는 법.
대사를 내뱉기도 전에 엄니가 말씀하시길.
"그래 뭐. 결혼하기 싫으면 하지 마. 난 결혼하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다. 자유롭게!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렇게 살아."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생각에 없었던 결혼이라는 것이 조금씩 생각나는 건 반전이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 지금까지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재밌는 이야기 주제로 일삼았던 나의 좌우명은 어느새 나의 삶으로 들어와 있었고, 학창 시절 내가 누리고자 했던 것들이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 후로는 그 어떤 변명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자유라고 외쳤지만 책임감 이란 것을 학습하고 있었나 보다. 비로소,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자유롭게 살자" 책임감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