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배우인 내가.
성공을 스스로 재촉하던 시절.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대학로에 뛰어들게 되었다.
운도 좋았을 것이며, 어느 정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기에 대학로 첫 작품에 주인공을 하게 된 건
성공의 계단을 내딛는 첫발이었고,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당시 대학로에는 '열정 페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였지만 곳곳에는 의리와 열정의 이름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이 남몰래 덮혀지고 있었다.
내가 들어간 대학로 첫 작품에는 페이가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회차당 페이를 받지만
그때 나는 회차와 상관없이 월급으로 받게 되었다.
그래 봤자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금액.
회차로 계산해 봤을 땐 더욱더 허무한 금액.
그래도 그때는 그것마저도 감사하고 즐거웠다.
하루에 2회씩.
월요일은 공연 없는 날.
연극의 클라이맥스에는 주인공이 오열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월요일을 빼고 매일 2회씩 오열해야만 했다.
하루에 2회씩.
1회 차 때 너무 울면, 2회 차 때 힘이 빠지진 않을까.
그런 계산 따위 없었던 혈기왕성하고 패기롭던 시절이었다.
당연한 것이다.
언제나 무대에서는 처음인 듯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뿌리가 강하게 박혀있는 무명배우이니까.
무대에 오르는 배우의 수보다 관객수가 적을 때.
그날은 공연은 취소가 된다.
(공연마다 차이가 있음)
어느 날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관객이 2명이었다. 배우는 4명이었고,
취소될 줄 알았던 공연은 평소대로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관객분들은 모를 것이다.
생각보다 관객석은 잘 보인다.
그날 두 분의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며 공연을 즐기셨다.
다소 서로 민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될 수 있었지만,
최선을 다한 배우들과,
있는 그대로를 즐겨주신 최고의 관객분들 덕분에
공연은 성공리에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 포토타임을 했다.
사진을 찍으러 무대 위로 올라오신 두 분과 함께
카메라를 바라보다, 카메라 뒤에 텅 빈 객석을 보고
그제야 다가오는 허무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찰칵-'
배우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며
너무 잘 봤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두 분의 말에
마주했던 허무함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얼마 안 되지만... 배우분들끼리 식사라도 하세요."
손사래 치는 손에 몇만 원을 꽉-쥐어주시고는
돌아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으며
감사인사를 해주셨다.
처음이었다.
2명의 관객을 두고 공연한 것부터
관객분들이 배우들에게 직접 돈을 주신 것까지.
그 몇만 원은
지금까지 무명배우인 내가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무기가 많은 무명배우 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