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감정을 잘 조절하는 편이다.
눈물도 잘 참고
화도 잘 참고
사실, 딱히 화는 잘 안나는 편이다.
꿈을 찾아 타지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부모님과 누나를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길을 가다 누나와 같은 모습의 분들을 보게 되면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수도꼭지와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도,
즐겁게 웃다가도,
울컥- 찾아오는 감정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공연으로 주머니를 채우던 때,
매회 하던 공연 말고 '특공'(특별단체 공연)이 종종 잡히곤 했다.
'특공'은 평소 하던 회차의 페이보다 조금 더 받을 수 있어서
언제나 주머니에게 특별히 환영받는 공연이었다.
특공 전날 연출님께서는 배우들을 불러 모았다.
"내일 특공은 조금 힘들 수도 있어. 정신지체 장애인 분들이라,
공연 중에 개입을 하실 수도 있고,
뜻밖의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평소대로 집중하도록 해."
다음 날 공연이 걱정된 건 처음이었다.
이전에 말했듯이,
무대 위에 서 있으면 객석은 생각보다 잘 보인다.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런 시기에.
나는 알 수 없는 버튼을 달게 된 것일까.
부디 이번 특공만큼은 잘 끝낼 수 있도록
괜찮을 거라는 자기 최면을 걸며 잠에 들었다.
최면에 걸린 잠은 잠이 아니었나 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극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최면은 계속되었다.
배우가 아니라 최면술사가 된 것 같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동료 배우 형은 내가 떨고 있는 게 보였었나 보다.
무뚝뚝한 형이었는데,
그날은 어깨를 토닥여주며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었다.
조명이 들어오고
나는 그 조명 아래 들어갔다.
첫 대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객석은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첫 대사를 시작으로 내 머릿속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보다 '마음'.
객석이 눈에 들어오고 누나와 같은 분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등장과 퇴장을 반복할 때마다 식은땀과 고여있는 눈물을 훔쳐냈다.
나는 잘 참는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연극 속에 캐릭터를 멱살 잡고 끌고 가던 중
커튼콜이 끝나고 무대 뒤로 가고 나서야
멱살도,
다리도,
눈물도,
다 풀렸다.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배우이기 전에 사람이구나 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직 나는 한없이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것도.
그날 이후에도 한동안 버튼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어릴 때부터 누나랑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동생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나는 전화통화 끝에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나도"
라고 말했다.
참을 줄만 알지 표현할 줄 몰랐나 보다.
배우라는 직업을 갖은 사람이 표현할 줄 모르다니,
이러니 무명이지...
아. 이건 취소.
누나는 끊임없이 사랑한다는 말로 끝인사를 했고,
나도 이제는
"나도 사랑해"
라고 말하게 되었다.
누나가 버튼에 잠금장치를 달아 준 것 같았다.
버튼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거짓말이지만.
누나 덕에 표현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이제 다음 통화 때는
내가 먼저 말해야지.
"사랑해"
라고.
이제 나는 표현할 줄 아는 무명배우 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