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
: 지구 상에서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7가지 사물을 말한다.
'예술'계통에 있다 보면
사람들은 대게 나를 독특할 거라 생각하거나
개성이 강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지극히 평범하고 싶은 무명배우이다.
직업 특성과 조금은 모순되는 삶의 방향이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희망이니까,
희망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바랄 수 있는 거니까.
맥락 없이 바라는 것뿐.
다만 남들보다 조금, 약간, 미세하게,
호기심과 상상력이 풍부한 무명배우인 나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에 꾀나 흥미가 있는 편이다.
아직도 어릴 때 즐겨봤던 '호기심 천국'이 종방한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위층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했다.
특별히 관심 가질 이유도 없었지만,
처음 집 계약할 때만 해도 꼭대기 층인 줄로만 알았던 나의 집 위에 누군가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호기심의 싹을 피우기 시작했다.
싹에 물과 햇빛을 주는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편함에는 언제나 독촉 우편물이 가득했고,
등기우편을 직접 전달하러 우체부 아저씨가 방문하는 날에는 집에 있음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안에 있다는 것을.
무명배우의 촉과 청력.
우체부 아저씨가 계단을 내려가고 몇 분이 지나면 위층에 문이 열렸다.
그런 일들이 빈번하자 우체국 아저씨는 나에게 문을 두드려 위층에 대해 물어봤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마스크를 쓴 채 한두 번 마주친 아저씨라는 점 말고는 없었다.
몇 달 전에는 형사분이 찾아왔다.
위층에 대해 역시나 물어봤다.
이런 것들이 나의 호기심의 싹에 자양분이 된 것이다.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으나,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력과 촉을 기반으로 한 추측들이기에
섣불리 확신을 갖지는 않았다.
일찍 자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어제는 일찍 자고 싶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는가.
피곤할 거 없는 하루였는데 자고 싶은 날.
나만 있는 건가.
어쨌든,
그렇게 일찍 잠들길 잘했다.
오늘 아침부터 복도에 요란스러운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위층이었다.
아주 큰 소리로 다투는 소리에 이어 복도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복도에 물이 가득했고, 4층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물은 나의 집을 지나
아래층까지 폭포처럼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수상가옥이 되었다.
이어서 2층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4층에서 수도꼭지를 터뜨렸나 봐요. 아저씨가 자물쇠를 부숴서 밑에 가서 담 넘어서 수도를 잠가야 할 것 같은데... 해주실 수 있어요?"
"아... 네..."
아침부터 풀리지 않는 몸으로 담을 훌쩍 넘었다.
평소에 신체훈련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역시 모름지기 배우란,
끊임없는 신체훈련을 해야 한다는 게
이런 이유에서 인가보다.
건물 전체 수도밸브를 잠갔다.
그리고 4층 아저씨를 복도에서 마스크 없이 마주쳤다.
두 분 이셨는데...
한분은 술에 많이 취해 있으셨고,
다른 한분은 물에 홀딱- 젖은 채로 화가 잔뜩-
술에 취해 있으신 분만 마스크를 끼고 계셨는데,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핏자욱이 입 주변부터 목까지 가득했다.
그리고 화가 잔뜩 난 아저씨가 2층 아주머니와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수도꼭지 부분이 낡아서 터졌는데...
아래 수도 밸브 잠그려다, 쟤가 자물쇠를 부쉈어..."
(글에 분노를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들은 그대로를 썼다.)
그렇게 나는 4층 아저씨에 대한 궁금증이 몇 가지 풀렸다.
두 분이 거주를 하고 계셨고,
술을 좋아하시며,
한분은 화가 많고 주먹이 매우 강하 시구나.
이후, 복도에 흘러내리던 인공폭포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고,
몇 차례 더 싸우는 소리가 더 들렸다.
상상력이 풍부하면
겁이 많아진다던데...
계약기간이 얼마 안 남긴 했는데...
이사를 가야 하나...
전셋값은 2년 전보다 올랐을 텐데...
서울 외곽으로 멀리 갈까...
미스터리가 아주 조금 풀리긴 했으나,
오히려 걱정만 하나 더 늘었다.
어쩌면 불가사의는 안 풀리는 게 나을 수도 있나 보다.
내일부터 더 강한 신체를 위해 노력하는 '무명배우'가 되어야겠다.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두 분 사이좋게 지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