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좋겠다.

by 진작
*단절
:1. 유대나 연관 관계를 끊음.
:2. 흐름이 연속되지 아니함.

머리를 감을 때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몸을 씻을 때는

피부에 가장 적절한 온도이었으면 좋겠다.

얼굴을 씻을 때는

미온수의 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로 원하는 온도의 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친구가 그랬다.

어딘가 있을 거라고.


그럼

그게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경력사항을 써 내려가던 중.

단절되어 있는 2년을 보았다.


2016년.

2017년.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

2020년.

2021년.


세밀하게 말해보자면 경력의 단절이라기 보단

공연을 하지 못했던 뼈아픈 시간들이었다.


새해 초가 되면 여러 지원사업들이 있다.

이것저것 지원하다 보면,

나의 경력들을 끌어모아 작성하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쉴 틈 없이 살아왔구나 싶으면서도,

컴컴한 기억을 더듬으며 나고 있는 과거 공연들을 꺼내어

적어 내려 가며 소탈한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숫자의 순서대로 차례차례 흐르던 시간을 바라보다,

년도의 숫자가 자연스럽게 뛰어 넘어가지는 구간을 멍-하니 봤다.



집이 기울어져가고 있을 무렵.

조금이나마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고

지지대를 받춰보고자 했던 아르바이트의 시간들이었다.


공연을 할 수 없었던 그 2년은 시간 동안 내가 모았던 돈들은

쌓아가지 못했던 빈 공간을 채워주었을까.


글쎄?


집이 무너지고 산산조각이 나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연기라는 건 끊임없이 하고 있었지만,

관객보다 손님들 앞에 서 있는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 사실이었다.


다시 열심히 달리고 있을 무렵.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그로 인해 2020년과 2021년에도 공백이 생겼다.


적응하고 싶진 않았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

2022년 마저 지난날들처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새해가 되고 나서 세운 계획 중 하나인 공연을 하고 싶었다.

역시나 지원서를 써 내려가다 텅 빈 2년의 시간들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오디션에서 과거 공연을 함께 했던 형을 만났다.

그간의 안부와 근황 토크가 이어졌고,

형은 나와 비슷한 단절 구간 동안(2020-2021) 꾀나 많은 생각들을 해온 듯했다.

먹고 살 일, 돈 버는 일 등등.

일정 부분 폭풍공감을 하면서도

잠시 왔던 폭풍을 날려 보내고 숨어있던 삶의 길을 바라봤다.

우리의 삶이 일이 아니었으면 한다.

먹고사는 삶, 돈 버는 삶.

백 번 천 번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폭풍은 매번 찾아온다.

그리고 그 폭풍이 지나고 나면 무서운 알고리즘처럼 교묘하게 이어지고 변해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

좋은 쪽?

나쁜 쪽?

아무쪼록 세상은 우리 개개인의 단절과 상관없이 흐른다.


세상이 삶이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운 날에는 시원했으면 좋겠고

추운 날에는 따뜻했으면 좋겠다.

가끔은 지독한 더위와 추위가 오더라도

그것에 긍정적 영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에 온도가 변하는 물처럼.

말 한마디에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정의되는 것처럼.


나는 다시 이어가 보련다.




변하는 세상은 괜찮은데
병나는 세상은 싫다.
별하나는 맘 편히 볼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