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기

반복의 재미

by 진작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인지

집구석구석에는

장식이라는 명분 아래,

지난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다.

1년에 한 번 손이 갈까 말까 하는 물건들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버려야지 하면서도

아직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니,

나도 성격 고치려면 한참 멀었다.


큰 맘먹고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추억의 물건들을 정리하고자 다짐했다.

첫 번째 다짐의 손길이 향한 건.


'공기'


요즘 친구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한때 학창 시절 최고의 인기놀이 중

항상 높은 순위를 차지하던 친구였다.

정식 명칭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동네에선 공기놀이라고 불렀다.

나름의 좋은 시대를 타고났기에

다양한 소재의 공기들을 접할 수 있었으나

과거에는 돌멩이 5개만 모여도

충분히 가능했던 놀이이었다.

정리를 위해 향한 손길이었지만,

정리하기 전 추억에 빠져보고 싶은 마음에

바닥에 .공기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놀이의 매력은

반복적인 동작과 점점 높아지는 스테이지.

그리고 그 스테이지마다 주어지는 미션들.

그걸 다 이겨내고 점차 올라가는 높은 성취감.

가상공간의 캐릭터의 레벨 업보다

나 자신의 실력 성장이 절실했던 놀이.


그런 .공기를 눈높이까지 던지고, 줍고, 받고를

반복하다, 툭-떨어진 .공기에게 눈을 마주쳤다.

잠깐이었지만 즐거웠을 .공기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장식품으로 몰락한 내가 행복할 거라 생각해?

'몰락'이라.......

생각보다 부정적인 표현에 살짝 놀랐다.

일단 해명을 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장식품은 아니고요... 그냥... 보관... 정도..."


해명이 효과가 있었을까.

5개의 공기는 잠시 서로 회의를 시작하더니

금세 대표 공기가 말을 이어갔다.


사과는 받아줄게.
반성은 하는 것 같네.


'사과도... 반성도... 한 적이... 없...'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행복이라...
행복하지.
나는
반복하면서 성장하고, 그렇게 나이를 먹잖아.
마지막 '꺾기'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잡는 수만큼 나이를 먹지.
나이는 그렇게 먹어야지.
단순하게 던지고, 줍고, 받고, 굴리고.
반복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놀이 안에 규칙이 존재하고
그 규칙을 지켜가면서 성장해.
그리고 실수하면 좌절하지 않고
또 다음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하면 되고.
그렇게 마지막에 내가 노력한 만큼의
나이를 먹게 되지.


인생 같았다.

규칙 안에반복하고 성장하고.

그렇게 나이를 먹고.


이렇게 재밌는 놀이를
왜 안 하는 거야.
그저 가상공간에서 성장하기 바빠.
그래도
과거의 영광을 잊지 말아야지.
우린 행복해.
우리만큼 재밌는 놀이가 어디 있어!


"아... 네... 맞아요. 그렇죠. 없죠. 최고예요."


상당한 자부심에 일단 맞장구 쳐주었다.

과거의 영광

지금의 위치

앞으로 나아갈 그들의 운명에 찬사를 보내며.

그저 묵묵히 응원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추억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고마움에 대한 우대라고나 할까.




생각보다 철학적인 놀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바닥에 굴려지는 .공기가

우리의 인생 같았다.

세상에 굴려진 '나' 같았고, '우리' 같았다.

던져지고, 굴려지고, 때론 잡히고, 놓치고.

반복하고.

그렇게 내일이 되면 나이를 먹고

조금씩 규칙을 만들어가는

나. 그리고 우리.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하루에

'인생'이란 '놀이' 같다는 생각에

정리가 덧없음을 느꼈다.

결코 귀찮아서가 아니.


행복하다고 말하는 5개의 .공기를 다시 주워 담고,

원래 위치에 두었다.

그렇게 오늘도 정리하지 못했... 아니 안 했다.

나도 성격 고치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건 굳이 고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p.s 사실 언제부터 우리 집에 당신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가끔 뵙기로 해요.


'깜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