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풍기

기억저장공간의 단골손님

by 진작

선선한 가을바람이 좁은 문틈 사이로 들어오고,

그 문턱 앞에 서있을 때면

올여름 더위는 어땠는지 생각 빠져본다.


'올여름은 안 더웠다.'

'올여름은 너무 더웠다'

'올여름도 잘 버텼다.'


여름을 유독 싫어하는 탓에

'버텼다'는 말로 한 계절을 정리한다.

여름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계절이기에.


올여름을 정리해보자면.............


'올여름은 너무 더웠으나 잘 버텼다.'


공을 돌려보자면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되기 전.

큰맘 먹고 마련한 에어컨에게 돌려야 할 것 같다.

고생한 에어컨을 지그시 바라보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 하는 찰나에

살짝 걸친 시야에 .선풍기가 보였다.


에어컨이 없었던 작년 여름.

의무감으로 내지는 .선풍기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없이 덮어둔 사실에

마음이 찔리기 시작했다.


에어컨에게 꽂혀있던 시선을

.선풍기에게 완전하게 돌리고는 눈을 마주쳤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이제야 봐주는구나.
제법 선선해졌나 봐?



질문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는 답변에는

퉁명스러움과 불만 가득함이 잔뜩 담겨있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이해력이 많은 편이기에.

이해력보다 많은 건.

끈기.

끈기를 갖고 한번 더 물었다.


"미안... 합니다. 그래서 행복... 하신가... 여쭙...



적당한 미안함과 적절한 비굴함을 섞어,

비율 좋은 한 구절을 만들었다. Good-!


사계절 중
한 개의 계절.
운 좋으면 양끝의 계절에 끝자락 즈음에
너를 만나게 되지.
그나마 만났던 여름에도
에어컨에 밀려서 구석 신세가 되었더라고.
행복하냐고?
그럼에도 내 대답이 듣고 싶다면,
행복하다 라고 말해줄게.
한 개의 계절이라도 나를 찾아주잖아.
언제나 한결같을 순 없어...
찾아준 계절에도 나를 쓰지 않아도 행복해...
이제는 에어컨이 내뱉는 바람을 저 멀리 보내는 신세가 된 것 같지만...
그래도 행복해. 행복하다고!



행복하다고 강조 하지만,

진짜로 행복한지는 의문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려고 그러는 건지,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그러는 건지.

어쨌든 둘 다 맞는 것 같다. 충분히 알았으니 더 이상의 질문은 생략하려고 했다.


잠깐!
내년에도 찾아줄 거지?
기다릴게.



당연히 찾을 생각이었지만,

반드시 찾아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들기 시작했다.

매년 한 계절에 추억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언제나 여름이면 한자리를 차지하는 .선풍기처럼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불필요한 기억이 아닌,

불 피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같은 사람이고 싶다.

피어오르는 연기에 .선풍기가 후-불어

언젠가는 닿게 되는.

누구에게나 힘들 때 생각하면 웃음 짓게 되는...

필요한 기억이고 싶다.


p.s 에어컨보다 항상 저랑 가깝게 있잖아요. 에어컨한테는 비밀로 해요.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