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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Aug 16. 2021

망상(2)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지난 학기, 대학교 수업에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님께서 특강을 오신 적이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분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코로나 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강의 수강을 신청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여러 조건이 맞아 그날 반기문 전 총장님을 실제로 뵐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20여 분전,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 입구에는 온도계, 소독제, 그리고 강의 참여 학생 명단이 놓여 있었다. 조교분의 인솔을 받아 온도를 재고 손 소독을 한 후 강의실에 입장했다. 적당히 가까우면서도 적당히 먼 5번째 줄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눈에 띄었다.


수업 정각, 강의실의 앞문으로 건장한 체구의 반기문 전 총장님이 들어오셨다. 경호원 몇 분의 안내를 받으며 강단으로 올라가셨는데 강의실 이곳저곳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감탄소리가 들려왔다.


"어,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님은..."


강의의 초입, 반기문 전 총장님을 소개하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교수님께서도 약간 긴장을 하신 것 같았다. 반기문 총장님에 대한 교수님의 소개가 끝나고 마침내 전 총장님이 마이크를 건네받으셨다.


"에, 여러분 반갑습니다. 반기문이올시다."




그날의 강의를 수강한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사실 시간이 꽤나 지났기 때문에 그날 느꼈던 감정, 느낌 등을 제외하고는 강의의 내용이랄지 하는 것들은 조금씩 기억 속에서 흐릿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생각나는 총장님의 한마디가 있다. 그건 총장님께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시던 당시 북극에서 보고 느끼셨던 것에 관한 부분이었다.



내가 북극을 수차례 갔었어요.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 언론인들과 같이. 근데 북극에 갈 때마다 느꼈던 것은 그곳 빙하가 매번 방문 때마다 눈에 띄게 감소하더라, 하는 부분이었어요.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에서, 최소한 환경적 이슈에 관한 한, 기후악당 내지는 기후범죄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산업구조가 기본적으로 석탄발전에 의존하는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범지구적 환경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환경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환경에 관한 다양한 국제적 이슈들을 접하곤 한다. 가장 최근에는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산불이 2주 넘게 진화되고 있지 않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뿐 아니라 현재 세계는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 극심한 산불로 시름하고 있다.


이렇듯 인터넷을 통해 보는 환경에 관한 이슈들은 가히 파괴적이라 할 정도로 심각해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 창을 닫고 공부를 하기 위해 카페로 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평온과 평화로 가득한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환경적 이슈들을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카페 안으로 몰려들어 당면한 자신의 일을 처리할 뿐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일까?


대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후위기에 관한 얘기를 했던 것이 논쟁이 되어 곤란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처음에는 분위기가 꽤 가벼웠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고 무거워지자 그동안 가만히 있던 친구 한 명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었다.


"야 근데 기후변화가 진짜냐?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봐. 지구온난화라고 하면 지구가 더워지는 거잖아. 근데 지금 춥잖아(당시는 겨울이었다). ... ... 나는 솔직히 그거 다 거짓말 같아. 거기에 현혹되는 사람들 솔직히 이해 안감."


갑자기 정색을 하며 덤비는 친구의 모습에 당시의 나는 약간 당황했었다. 어느새 이야기는 (정말 이상하게도 순식간에) 기후변화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모습으로 변질되었고, '기후변화가 진짜다'라고 주장하는 나와 '기후변화가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죄다 멍청이임'이라고 주장하는 친구, 그리고 그 중간에서 '솔직히 별로 관심 없어 보이는' 다수의 친구들로 나뉘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던 것이 갑자기 친구 사이의 싸움으로 번질 양상을 보이게 되자 나는 이후 급격하게 소극적으로 변했다. 내가 하는 말에 정말 너무나도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친구의 모습에 당황을 하는 사이 친구가 결국 내 의견을 눌러버렸다. 그날, 논쟁의 승자는 '기후변화 같은 건 사기'파의 친구의 것이 되었고 당시 나와 친구와의 '싸움'을 관전하던 친구들은 모두 그의 편이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기후에 관한 이야기가 일종의 정치적 이야기처럼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였다. 그 이후 한동안 나는 친구들과 환경 및 기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들은 기후에 관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으니까(기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람들이 지루해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괜히 꺼낸 것이 괜한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2021년이 되었다. 그런데 도저히는 안되겠다. 마음에 끓어오르는 생각들, 감정들, 분노들이 너무나도 켜켜이 쌓여버렸다. 세계는 점점 악화일로를 밟고 있다. 이런데도 정말 기후변화가 거짓이고 기후위기가 사기란 말인가?


앞서 작성한 글처럼 나의 망상은 하나의 디스토피아다. 모두가 공평하게 죽음으로 향해가는 거대한 비극.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완전히 평등한 결과를 인류는 드디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공평한 죽음.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이라는 평등한 결과 말이다. 인류가 마침내 모두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마르크스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무덤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기뻐하려나? 그들의 바람처럼, 인류가 마침내 완전한 평등을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환경에 대해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 것은 지금 반드시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과 귀를 막는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용기를 내 두려움을 두 눈으로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진보이고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부디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너무 늦지 않게, 아직 우리가 힘을 쓸 수 있을 때 말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마침내 벌이 내려질 때, 그때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ps.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리곤 깨닫지, 신은 아프리카를 떠나고 없다는 것을."


지금 신은 지구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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