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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09. 2020

어른이 안 보면 누가 보나요

애 봐 준 공을 찾는 어른들

(맞벌이 부모에게는 마음 아픈 이야기입니다. 저 또한 남편과 평일/주말 번갈아 일하며 고군분투한 시기가 있었기에 맞벌이의 노고를 압니다. 하지만 이 글은 온전히 아이 입장에서 썼어요.)


ㅣ자식은 부모가 키워야 하지만


수년 전 뉴욕타임즈 블로그에서 “조부모가 된 베이비붐 세대가 손주들을 돌보지 않으려 한다"는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다. 글 속에는 “여유로운 노년을 즐기고 싶다," “요즘 아이들은 권리 의식(sense of entitlement)이 강해서 나와 맞지 않는다" “솔직히 육아는 너무 힘든 일이라 자신이 없다"는 등 베이비부머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다. 당시 나는 미국을 경험해보지 못해 미국을 온전히 개인주의의 나라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도 조부모가 손주를 양육하는 관습이 있고, 그 관습의 변화를 뉴욕타임즈 같은 유명 일간지에서까지 다룬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하지만 그 포스팅에 달린 댓글들, 특히 베플들은 더 의외였다.


“권리 의식(sense of entitlement)이 강화되는 쪽으로 나라를 이끈 세대가 당신들인데 이제 와서 싫다고?”

“젊어서 호황도 누리고 늙어서 여유도 누리고. 건강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없네.”

“베이비부머들이 이기적인 게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원문은 “Newsflash: Babyboomers are selfish”였다. 직역하면 “속보: 베이비부머들은 이기적이다"인데,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속보'라고 표현하는 반어법이다.)


베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베플로 보일 법한 댓글도 있었다.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지.”

자식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부모에게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어른들에겐 책임이 전혀 없는 걸까? 타주에 살던 시절, 갑작스런 폭설로 휴교가 되면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의 친구는 우리 집에 와 있곤 했다. 아이를 한 명이라도 키워보면 안다. 자식을 온전히 부모만의 시간과 노동으로 길러내기는 어렵다는 걸. 그걸 겪고도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지"하며 팔짱 끼고 있는 어른들. 정말 어른 맞나?


ㅣ책임보다 인정욕구가 앞서는


과거엔 아이를 낳으면 여성이 무조건 아이를 돌보았다. 그게 자신의 일이라는 데에 의심을 품지 않은 채로. 부모가 어떤 사정에서든 아이를 돌보지 못하면 조부모가 아이를 맡았다. 조부모도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데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교육 수준이 높아진 요즘, 여성들은 아이를 홀로 돌보는 현실을 '독박육아'라고 표현한다. 하루 종일 아이를 위해 요리하고 놀이하고 장을 보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을 그저 자신의 책임으로 무조건 받아들이지만은 않는다. 고등교육을 받고도 집에 묶인 처지를 자꾸만 한탄하며 '독박을 썼다'고 억울해 한다.


하지만 명문대를 나왔든 박사 학위가 있든 전문직 출신이든 일단 아이를 낳았으면 양육이란 온전히 어른의 책임이다. 그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던 그동안의 관행이 틀렸을 뿐, 출생하는 순간부터 온전히 의지할 애착 상대를 원하는 인간의 유전자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바깥 세상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벌어지든 말든, 맞벌이 없이는 생계가 어렵든 말든, 부모가 뛰어난 인재이든 말든, 일단 태어난 아기는 제 옆에 딱 붙어서 전적으로 돌보아줄 어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도 회사에서 잘 나갔다고."

"독박육아 정말 억울해."

"배우자 월급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

하고 부모가 둘 다 집 밖으로 나섰다면 한때는 조부모가 의무적으로 손주를 맡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나도 내 인생이 있는데."

"너 키워줬으면 됐지, 네 자식까지 키워줘야 하니?"

"애 봐 준 공(功)은 없다던데?"


그래서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아이들. 누구도 전적으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있다.



ㅣA에 대하여


서울 살 적에 백일 된 딸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아파트 마당을 거닐다 보면 동네 할머니들을 자주 마주쳤다. 할머니들이 모여 앉으신 평상 곁을 지나치노라면 다들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셔서 나도 평상에 함께 앉아 있다 오곤 했다.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안기면 울음을 터뜨렸지만 내가 안고 있는 한은 낯선 이에게도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혼자서 균형을 잡고 앉기 시작하면서는 평상 중앙에 앉아 할머니들의 시선을 독차지했고 기어다니면서는 이 할머니, 저 할머니에게 다가가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아이에게 마냥 예쁘다, 예쁘다 해주셨다. 그것이 평상 할머니들의 분위기였다.


한편 놀이터의 할머니들은 사뭇 다르셨다. 그 분들께는 직접 돌보아야 하는 손주들이 있었다. 빨빨 돌아다니는 아이를 따라 미끄럼틀까지 오르락 내리락 애정을 불사르는 할머니도 계셨고, 유모차에서 내려 달라고 우는 아이를 끝까지 무시한 채 벤치에서 넋을 놓고 있는 할머니도 계셨다. 


놀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아이 중에는 내 아이와 겨우 이틀 차이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아직도 아이의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만 이 글에선 A라고 적겠다. 처음 만나던 날, A도 내 아이도 백일 즈음이었고, A와 함께 있던 보호자는 친할머니셨다. 할머니께서는 며느리가 3개월의 출산 휴가 후 바로 복직하여 아들 내외를 돕고자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두 번째 만나던 날, 할머니는 육아가 너무 고되다며, 당신도 고향에서 당신만의 생활이 있으셨는데 이제 그 생활이 죄다 없어졌다고 한탄하셨다. 세 번째 만났을 때, 할머니는 더 이상 못 견디겠어서 A의 외할머니에게 건의를 했다고 하셨다. 한 달씩 번갈아가며 A를 담당하자고. A의 외할머니는 생각해 보리라 답했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나의 입가에서는 '그냥 1-2년만 참으시면 A를 어린이집에 보내실 수 있을 텐데요'하는 말이 맴돌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후로는 한동안 할머니도 A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A의 양육자가 바뀌었거나 겨울이 되어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다음 해 봄, 다시 만났을 때에 할머니는 표정이 한결 밝으셨다. 당신의 건의하신 대로 외할머니와 한 달씩 번갈아가며 A를 돌보고 있다고, 이번에도 고향에 내려가서 쉬다가 다시 올라온 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이제 편하시다니 다행이라고, 그런데 A의 외할머니는 아직 한 번도 뵌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마침내 A의 외할머니를 뵌 것은 딸아이가 걸음마를 막 시작한 해의 여름이었다. 선선한 저녁 바람 속에서 놀이터는 시끄럽고 북적였다. 나는 그 사이에서 A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였는데 주변에 어른이 없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A의 친할머니가 보이질 않아서, 벤치에 앉은 어른 중 누군가가 A의 외할머니이리라 추측했다. A는 내 아이쪽으로 걸음마를 하여 다가왔고, 이윽고 불현듯 내 아이의 을 때렸다.


아프진 않았는지 아이가 크게 울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계실 A의 외할머니가 부리나케 달려오실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도 다가오질 않았고, 그래서 나는 '때리면 안 된다'는 말을 A에게 직접 해야 했다. 그래도 A는 아이를 한 대 더 때렸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며칠 후 비슷한 시각에 놀이터에서 다시 A를 만났다. A에게 인사를 하자 투피스 차림의 여성이 내게 인사를 해 왔다. A의 엄마라고 했다. 인사가 끝나자 A의 엄마는 등을 돌리고 낯선 할머니와 대화를 했다.

"엄마, 우리 뭐 먹을까? 칼국수?"

나는 저 분이 A의 외할머니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참에 A가 또 내 아이의 뺨을 때렸다. 하지만 A의 엄마도 외할머니도 저녁 메뉴를 논의하느라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나는 '때리면 안 된다'는 말을 A에게 직접 해야 했다. 북적이는 놀이터에 돌쟁이를 세워둔 채로 그깟 칼국수 이야기에 빠져 있다니. 같은 공간에 가족이 둘이나 있는데 애를 주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이후로도 A네를 몇 번 마주쳤다. 한 번은 A가 아이를 때리는 모습을 A의 엄마가 목도하곤 사과를 하기도 했고, 또 한 번은 A의 엄마가 보지 못하여 내가 일러주기도 했다. 그러나 A의 엄마는 직접 보지 않은 이상은 믿고 싶지 않은지 A에게 주의를 주지도, 내 아이에게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미국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도 가끔 A가 생각난다. A를 처음 만나던 백일 즈음의 나이에 내 아이는 한 달에 한두 번 양가 조부모님을 만나 안기면 대차게 울었다. 오랜만에 품에 안은 손녀가 울기만 하는 상황이 섭섭하여 어른들은 온갖 사유를 상상해내셨다.

화장 때문인가? 향수 냄새가 싫은가?
이 티셔츠가 까끌한가?
배가 고픈가 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이가 낯을 가리기 때문이었다. 백일 된 아이에게 조부모는 지난 달에 만났더라도 낯선 사람에 불과했고, 낯선 사람에게 안겨 있기 무서웠기에 제발 엄마 아빠가 나타나 구해주길 바라며 있는 힘껏 울어댄 것이다.


아기에게 낯선 이는 생명의 위협이다. A는 한 달에 한 번 양육자가 바뀔 때마다 기분이 어땠을까? 울음으로라도 그 기분을 표현했을까? 표현했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텐데.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정과, 고향에 생활이 있는 사정과, 육아가 고되다는 사정을 마구 표현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작고 어린 자기의 사정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심정이 어땠을까?


뒤늦게나마 주양육자가 생겼을까? 



ㅣ육아는 그냥 '내 일'


A를 떠올리면 외할머니, 친할머니, 이웃집 아주머니, 파출부 아주머니 사이를 오가며 자란 유년의 내가 생각난다. 그나마 A는 제 집에서라도 지냈지, 나의 경우 일정한 보호자 없이 이곳저곳 떠돌다 보면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짐덩이가 된 듯한 기분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부채감은 어른들의 생색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맞벌이하며 너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그렇게 안 했으면 우리 식구 쫄쫄 굶었어."

"외할머니가 너를 제일 많이 봐주셨지. 고마운 줄 알아."

"S네 엄마(이웃 아주머니)한테도 고마워해야 돼."

뒤늦게야 깨달았지만, 부모가 맞벌이로 고생했다면, 그리고 주변 어른까지 고생했다면, 아이도 그만큼 고생한 셈이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것도, 출산 후에 맞벌이를 강행한 것도 부모의 선택이다. 반면 아이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잉태되어 출생했을 뿐이고, 출생을 하고 보니 보호자가 필요했을 뿐이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보호자의 일관된 사랑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일관된 양육자가 없었다면, 어쩌면 아이가 고생한 몫이 제일 클지 모른다. 마음 편히 자신과 세상을 탐색할 시기에 매사 불안감으로 위축되거나 폭발하였으니 인생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고, 그 단추를 다시 풀어 제대로 끼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아이들은 "내가 군말 없이 남의 손에 자란 덕에 맞벌이로 먹고 살았으니 고마운 줄 알라"며 생색내지 않는다. 


양육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든, 양육은 헌신이나 희생이기 이전에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다. 어른이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일 뿐,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대단한 일로 포장해버리면, 어른들 스스로도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하는 줄 착각한다. 그리고 그 대단한 일을 했다는 공(功)을 인정 받으려 하고, 인정 받지 못하면 억울해하고, 억울하니까 아이를 밀어낸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데 한 아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어른의 숫자는 마을은 커녕 가족 안에서도 어째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정부나 직장의 보육 정책이 개선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직 요원한 시점에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고 어른들이 너도 나도 발을 빼면 아이들은 어떡하나. 지갑을 열어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시간과 노동이 요구되면 '애 봐 준 공'을 찾거나 '독박'을 피하려 한다.


남녀가 평등해지고 노인도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해도 인간의 유전자가 바뀌지 않는 한, 한 가지 원칙은 불변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에겐, 양육이 그저 나의 일이자 책임임을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것.


이 원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켜지다 말다 하는 듯하다. 아이들은 힘이 없으니까. 어른처럼 지속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힘이 아직 없으니까.


그리고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더 이상은 아이가 아니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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