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양립할 수 있는 분노
벌써 9년 전,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 주의 금요일에 친정 부모님을 찾아 뵈었다. 당시 남편과 나는 S사의 서로 다른 계열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업무량이 많아서 퇴근은 빨라야 예닐곱 시였다(정식 근무 시간은 두 계열사 모두 오전 여덟 시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였다). 퇴근 후 부모님이 계신 C시에 도착하려면
회사 또는 신혼집에서 강변역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지하철로 이동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C시로 이동 -> C시 터미널에서 부모님 댁까지 이동
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두 시간이 넘게 걸릴 터였다. 그렇다면 일러봤자 아홉 시가 다 되어 도착해서 저녁을 차려 먹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우리 부부는 신혼집에서 같이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C시로 출발하기로 했다.
이 모든 내용을 나는 부모님께 미리 알려드렸다. 아마 밤 열 시는 되어야 도착할 거라고 시간도 알려드렸다. 부모님께서는 알겠으니 조심히만 오라고 하셨다.
금요일 당일, 우리는 예정대로 재빨리 잔업을 마치고 신혼집으로 퇴근하여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신혼여행에서 구입한 부모님 선물을 챙기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샤워도 했다. 친정집에서 한밤 중에 샤워까지 하는 부산을 떨고 싶지 않아서.
집을 나서면서는 어머니께 문자를 보냈다. 밥도 먹고 샤워도 했고 이제 출발한다고.
지하철을 타서는 잠시 고민했다. 당시 C시로 가는 고속전철이 개통되어서 남편은 어쩌면 그 전철을 타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을 하다가 결국은 계획대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서도 어머니께 문자를 보냈다. 이제 버스를 탔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 오시더니 “너네 그냥 오지 마" 하셨다. 지들 할 일 다 하고 온다며 짜증을 내셨다. 난데없이 돌변한 어머니의 태도에 나는 대응할 기운이 없었다. 한 주의 마지막, 추가 근무를 마친 후 서둘러 채비하여 버스를 타느라 체력이 바닥나기도 했지만, 당시 결혼식이 끝난 지 겨우 일주일이 넘은 시점이었고, 우리 부부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어른들의 욕심, 변덕, 간섭에 더 이상 신경 쓸 여력도 없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저 “우린 벌써 버스를 탔다"고만 대답했고, 어머니는 지금 시간이 몇 시냐면서 짜증을 더 내시다가 전화를 끊으셨다. 남편에게 통화 내용을 설명하니 남편은 시큰둥했다. 역시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니들 올빼미냐? 왜 이렇게 밤에 다녀?” 하셨다. 나는 “밤에 올 거라고 미리 얘기했잖아. 이제 겨우 열 시네” 하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물건들이 처분되어 이제 별로 내 방 같지 않은 내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잠옷으로 갈아 입었고, 나는 부모님이 TV를 보고 계시는 거실로 나와 그들 옆에 앉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내게 다시 외출복으로 갈아 입으라고 하셨다. 이유를 물으니 당신들에게 절을 올려야 한단다. 그리고 절을 하려면 복장이 단정해야 한단다.
“아깐 오지 말라고 엄마가 소리를 치던데 이젠 절을 받고 싶다고?"
황당해서 물었더니 절은 원래 해야 하는 거란다. 다들 그렇게 한단다. 나는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도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결혼 준비 과정에서 양가 부모님과 트러블을 겪으며 내가 정착한 방법이었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그러려니 하고 그냥 해 달라는 대로 해 주고 말자… 나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고,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온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영문을 물었다.
“절을 하래. 근데 옷을 갈아 입고 해야 한대.”
이에 남편도 옷을 갈아 입었다. 군말 없이. 그리고 우리는 다시 외출복 차림으로 부모님 앞에 섰다. 바라시는 대로 절을 올리고 다시 바로 섰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내게 물으셨다.
“넌 왜 그런 얼굴로 절을 하니?”
“내 얼굴이 왜?”
“네 얼굴이 죽상이잖아.”
“오지 말라고 짜증을 내더니 이젠 옷 갈아 입고 절을 하라는데 그럼 기분이 나쁘지 안 나빠?”
그러자 남편이 관두라는 식으로 팔꿈치를 툭툭 쳤다. 어머니가 말씀을 이었다.
“원래 절은 해야 하는 거야. 다들 그렇게 해.”
“근데 아까는 우리더러 오지 말라고 했잖아. 오지 말라더니 절은 받고 싶어?”
“너네가 너무 늦게 왔잖아.”
“늦을 거라고 미리 말해줬잖아.”
“근데 네 아빠가 성질을 내잖아! 당신 말해 봐, 당신이 아까 소리쳤잖아! ‘얘네 오지 말라고 해!’ 하고 소리쳤잖아!”
어머니가 자신을 향해 언성을 높이자 아버지는 소파에 앉으신 채로 점잖은 척 지그시 입을 다무시더니 나를 가리키며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데리고 들어가라.”
나는 남편에게 떠밀려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따졌다.
“그러니까 불만이 뭔데? 오겠다는 시간에 왔는데도 뭐가 불만이었냐고! 아빠는 불만이 있으면 직접 얘기를 해 보라고!”
방으로 들어가서는 남편한테 핀잔을 들었다. 그냥 넘어가자고,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가자고. 잠옷으로 도로 갈아입고 나니 이번엔 어머니께서 방으로 들어오셔서 내게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다. 어머니를 따라 거실로 나가 보니 아버지는 주무시러 가셨는지 보이지 않는다(사실 아버지는 평소 거실에서 주무시고 어머니 혼자 안방에서 주무신다. 일찍부터 매일 각방을 하시던 분들이 사위만 오면 한 방에서 주무시는 모습이 우습곤 했다). 어머니는 야단을 치셨다.
“네 아빠가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지 아니? 저기 벽에 엘리베이터 층수(거실 벽에는 엘리베이터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액정이 있었다)가 1층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면 ‘애들이네. 애들이 오나 보다' 하고 잔뜩 기대하고, 그러다 엘리베이터가 다른 층에서 멈추면 실망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또 ‘이제 오나 보다. 이제 애들 와' 하면서 저녁 내내 기다렸어.”
“근데 내가 열 시는 되어야 온다고 얘기했잖아. 얘기했는데 왜 그러고 있어?”
“난들 아니? 그렇게 기다리는데도 안 오니까 성질이 나서 ‘얘네 오지 말라고 해!’ 하고 나한테 버럭 소리를 치더라. 그래서 오지 말라고 한 건데 넌 어떻게 그렇게 대들 수 있니? 너 회사에서도 그렇게 네가 하고 싶은 말만 따박따박 하니? 엄만 오늘이 한 평생 제일 서운한 날이야.”
그래, 그렇게 기다리는데 정말로 늦게 오면 화가 날 수도 있겠네. 아빠는 워낙 성격이 급하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아버지를 보자 마자 사과를 했다. 아버지는 “벌써 다 잊어 버렸다”며 허허 웃으셨다.
시간을 돌려 그 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손을 잡고 말해주고 싶다.
Jin, 자식 사랑을 제대로 아는 부모라면 초과근무 후에 두 시간 거리를 달려와 준 자식에게 화를 내지 않는단다. 당장 절을 받기 위해서 한밤 중에 옷을 갈아 입어라 마라 똥개 훈련을 시키지도 않아. 절이야 굳이 받고 싶다면 다음 날 아침에 받아도 되지 않겠니? 너는 부모님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뵙고자 토요일 아침이 아닌 금요일 저녁에 C시에 가기로 했고, 늦은 밤에 부모님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저녁도 스스로 챙겨 먹고 샤워도 미리 했지? 자식 사랑을 아는 부모라면 그걸 두고 ‘지들 할 일 다 하고서야 온다'며 비난하지 않아. 오히려 지들 할 일 제대로 하고 다녀서 고맙다고, 다 하지 못한다면 보탬이 되어주고 싶다고 하겠지. 어머니는 네가 서울에 살기 시작한 대학 시절부터 자꾸만 C시 방문을 독촉했지. 네 아빠가 기다린다고. 네 아빠가 아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고. “얘는 왜 집에 안 오냐"며 버럭버럭 화를 낸다고. 근데 Jin, 그건 네 책임이 아니라 부모님의 부부관계가 소원하기 때문이야. 네가 없이는 둘이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뭘 해야 재미있는지를 30년 가까이 같이 살고도 여태껏 모르는 거지. 열 시 넘어 도착한다고 미리 연락을 받고도 저녁 내내 엘리베이터 층수를 지켜보며 ‘애들이네, 애들이 오네'하며 착각하고 실망하길 반복하다가 “얘네 오지 말라고 하라"며 화를 내는 아버지의 행동은 정상이 아니야. 그리고 그 말을 네게 그대로 전하며 네 탓을 하는 어머니의 사고방식도 정상이 아니고. 그 비정상 속에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단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대든다고 차단하며, 서운하다고 죄책감을 일으키고, 일터에서도 그러냐며 트집 잡지 않아.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기를 바라거든.
흔히들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누군가를 용서하려면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모두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국의 철학자 조지프 버틀러(Joseph Butler)는 ‘숙고된 분노'는 용서와 양립 가능하다고 말했다. <용서에 대하여>를 쓴 강남순 교수는 버틀러의 ‘숙고된 분노'와 ‘성급한 분노'를 다시 세 종류로 세분화한다.
본능적 분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나타내는 분노
성찰적 분노: 잘못된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분노
파괴적 분노: 복수를 원하는 분노
나는 부모님께 상처 받은 일들을 오목조목 지적하며 부모님께 복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이에 대해 브런치에 쓴 글도 있다). 그런데 <용서에 대하여>에 따르면 가해자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복수가 아니라 오히려 용서의 초기 단계라고 한다. 반대로 아무런 지적 없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 묵인, 망각,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용서에 대하여>에서 정의하는 복수란 상대를 악마화하며 그대로 앙갚음하는 행위다. 나는 부모님을 악마로 보지 않는다. 부모님은 모자란 인간일 뿐이다. 배우자와의 불화로 애정 결핍에 시달리자 자식을 통해 그것을 채워 보려 했고, 채워지지 않자 자식을 탓했고, 화가 쌓이면 욕설과 비난과 구타로 해소했다. 반평생이 지나도록 그렇게 살아오시며 당신들의 행동 패턴을 인지조차 못하신다. 내가 분노하는 지점은 그런 부모님께서 모자라지 않은 척, 대단한 어른인 척, 인정과 대접과 칭송을 지독히도 바란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자식이 오지 않는다고 마음껏 화를 내시고, 그 화를 들어가며 찾아 온 자식이 납작 엎드려 절해 주기를 바라시고, 절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시비를 거시고, 언쟁이 일어나자 서운하다며 이 모든 상황을 자식 탓으로 몰아가는 오만.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배려는 당연한 의무고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배려는 은혜와 은공으로 평가절상하는 오만. 자식이 표출하는 분노는 싸가지가 없고, 부모가 표출하는 분노는 그럴 만하기 때문이라는 내로남불. 부모님이 저지르신 다른 어떤 폭력보다도 나는 그 오만한 이중잣대에 분노한다.
부모님의 오만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리 지적을 해드려도 끝이 없다.
"아빠가 엄마를 힘들게 해서 그랬나 보지." ("애 눈 앞에 식칼 들이대고 얼굴에 물 뿌리며 고문하는 일이 '배우자가 힘들게 해서'라고 덮을 수 있는 일이야?")
“너 공부시키느라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그래서 내가 돈 갚았는데 엄마가 도로 돌려줬잖아. 그래 놓고 왜 생색이야?”)
“맞벌이 하느라 바빠서 부부싸움을 많이 했지.” (“부부가 모두 다섯 시에 퇴근하고 방학 내내 집에서 노는 한가한 맞벌이가 세상에 또 어디 있어? 아빠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술주정하고 엄마가 시비 걸어서 생긴 싸움인데, 하도 한가해서 생긴 싸움인데 왜 맞벌이 탓을 해?)
“그래도 아빠는 너를 지키면서 살아왔다.” (“S네 집에서 내가 왕따 당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몇 년 동안 나를 S네 집에 맡겼잖아. 그게 지키는 거야? 아빤 술만 마시면 나한테 딸년은 필요없다고 욕을 퍼부어 놓고, 남들 앞에선 다정한 척, 딸바보인 척 코스프레 좀 그만해. 남들한테 보여주는 이미지가 진짜 자기 모습인 줄 알았나 보지?”)
"그래도 네가 멀리 사니 걱정이 된단다." ("멀리 있어야 걱정되고 가까이 있으면 귀찮지?")
현실을 직시할 줄 모르는 자기 미화. 자신의 실체를 이렇게나 모르고 사셨다니 측은하면서도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불쌍하면서도 화가 난다. 그러한 양가감정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용서에 대하여>를 통해 용서와 성찰적 분노가 양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용서가 완성되려면 가해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과연 변화가 있기는 한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부모가 되어 다행이다.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비정상적인 부모님의 요구 속에서 아직도 꾹꾹 참아가며 살고 있었을 테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쏟아내는 욕심, 요구, 비난이 얼마나 치졸한 오만인지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치졸한 오만의 가해자가 되어 나로 하여금 조금은 겸손한 부모가 되도록 (의도치 않게) 인도한 나의 부모님, 어쩌면 그 역시 다행인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