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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24. 2020

아이 머리에 똥 싸지 말자구요

돌아오는 건 자식의 심판

유아 그림책 중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라는 책이 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땅 위로 나온 두더지의 머리 위로 커다란 똥이 철퍼덕 떨어진다. 두더지는 그것이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 내고자 주변의 동물들을 심문한다. 소, 돼지, 토끼, 비둘기, 염소… 그러던 중 파리 두 마리가 두더지 위에서 윙윙 냄새를 맡고는 “이건 개가 한 짓이야" 한다. 그래서 두더지는 동네 개 한스를 찾아가 그 머리에 콩알만 한 두더지 똥을 누어준다.


이 책의 테마는 복수다. 배변기의 아이들은 (많은 경우 그 이후의 아이들도) 똥에 관심이 많은데 똥을 이용하여 귀엽고도 시원한 복수극을 그렸다. 억울한 감정이 있어도 아직은 표현이 서툴러 마음 속에 담아두기 일쑤인 어린 아이들에게 두더지의 직관적이고도 직접적인 복수는 통쾌함을 선사했으리라.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다.


부모님과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전교 5등 밖으로만 나가도 창피해 죽겠다고, 병신이라고 했잖아. 그럼 엄마도 학창시절에 그 정도 성적이었어? 엄마가 하지도 못한 걸 왜 나한테 요구해? 욕심 나는 대로 성질 나는 대로 함부로 입을 놀리니까 좋아? 엄마네 학교 애들이 엄마더러 욕쟁이라고 흉 보는 거 나 많이 들었는데. 자식한텐 창피하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본인이 창피한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어?”


그러자 아버지는 “애미한테 못하는 말이 없다"고 역정을 내시며 애미를 어찌 그런 시선으로 볼 수가 있느냐고 하셨다.


“창피하다고 병신이라고 먼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본 건 엄마인데? 나더러 창피하다고 병신이라고 막말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본인이 직접 들어보니 기분이 나빠? 엄마한테 괜히 욕지거리 들은 학생이 30년 동안 수천 명이었을 텐데, 본인이 뱉은 말의 1/100도 직접 듣기는 싫어? 자기가 듣기 싫은 말은 남한테도 하지 말았어야지.”


정서적 학대를 당한 사람들은 자기 감정에 의심이 많다.

화낼 일이 아닌데 괜히 화를 냈나?
별 것도 아닌데 속 좁게 굴었나?
나만 참으면 됐을 텐데.


나 역시 위의 대화가 끝나고

괜히 발끈했나?

싶었다. 그렇게 반사적으로 드는 나에 대한 의심에 이제는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발끈할 만해서 발끈했다고, 30년 넘게 참다가 한 번 발끈했으니 그 정도는 괜찮다고, 아니, 잘했다고. 30년 넘게 투척된 개똥에 두더지똥이라도 하나 누어 주었으니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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