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에 손가락질하는 라떼 어른들
한국에 있을 때 어느 기업체에서 상근 통역사로 일했다. 당시 나는 불평이 많았다.
"무슨 회의인지 미리 알려주셔야 통역을 하죠."
"100페이지를 어떻게 하루만에 번역해요?"
"다섯 시 반까지 수원에서 회의하고 여섯 시까지 남산타워에 가서 만찬 통역을 하라고요...? (저 날아다니는 수퍼우먼 아니에요......)"
"자료 조사는 제 일이 아니에요."
“회의록 작성도 제 일이 아니에요.”
싸가지 없다고 욕 먹을 줄 알면서도 징징거리며 선을 그었다. 통역사는 말을 옮기는 기계 취급을 받기도 하고 간혹 비서처럼 여겨져 무관한 업무를 떠안기도 한다. 선을 긋지 않으면 내가 혹사되는 건 물론이고 언젠가 후임으로 들어올 다른 통역사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전임자는 해줬는데 당신은 왜 안 해주느냐'는 핀잔이 가능해질 테니까.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입소문을 탄 후 당시 가입되어 있던 지역 맘카페에서 어떤 리뷰를 읽은 적이 있다. 리뷰와 댓글들의 요지는 이러했다. 김지영 씨에게 일어난 일들이 이렇게나 징징댈 일이냐, 자기 연민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맘충'이란 한 마디에 정신병까지 걸려버리다니, 80년대생들은 역시 유리멘탈이다, 우리 70년대생들은 더 심한 차별을 당하고도 워킹맘 생활을 이어왔는데, 80년대생에 비해 우린 쇠심줄 멘탈이다.
나는 댓글을 달려다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아예 새 글을 작성하여 글쓴이를 반박했다. 우리는 유리멘탈이라 징징대는 게 아니라 욕을 먹더라도 징징대서 썩은 고인 물을 바꾸려는 것뿐이라고.
체제를 견디는 고통과, 체제를 바꾸려는 고통 중 어느 쪽이 더 아플까? 고통의 크기란 측정하여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시댁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편하겠다'고 한다.
실상은 별로 편하지 않다. 우선은 남편이 시부모님과 많이도 싸웠다. 결혼을 앞두고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생전 바라지 않던 제사 참석을 요구하셨다. 이제 결혼을 하니까 제사에도 꼬박꼬박 참여해야 한다고. 총각은 안 와도 되지만 유부남은 와야 하는 제사 문화가 의아했지만 과연 제사 풍경이 어떠한지 남편은 결혼 한 달 전에 혼자 제사에 참석해 보았다. 남자들은 거나하게 취해 헛소리를 해대었고 여자들은 좁은 주방에서 끝없이 전을 부치느라 기름에 절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곧바로 공표했다고 한다. 이런 데에 나는 Jin을 데려오지 못한다고. 엄마도 이제 이런 일 그만 하시라고.
고성이 오가고 한참을 싸웠다고 했다. 타협안으로 남편 혼자서만 그동안 제사에 참석했다. 시댁 제사 날에 나는 집에서 혼자 번역을 하거나, 출산 후엔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는 딸이었기에 우리 부부의 제사 참석은 더욱 요원해졌다. 여자끼리 허리 굽혀 만든 음식으로 남자들이 주인장 노릇하는 장면을 남편은 딸에게 보여 주기 싫어했다. 그래서 제사 날마다 나는 딸과 집에서 놀기만 하였는데, 그래도 별로 편하지는 않았다. 시댁에서 또 말다툼이 벌이지진 않을까, 남편이 핀잔만 잔뜩 듣고 있진 않을까, 순간순간 씁쓸한 걱정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후로 제사가 아닌 집안 행사에서 마주치면 어떤 시댁 어른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원피스를 입은 나의 복장을 지적하며 “또 말 나오겠네"하고 혀를 찼고, 내 딸을 처음 만나서는 “애가 세 돌이 다 됐는데 이제야 보네?"하며 비꼬기도 하였다. 모두 그다지 편하지 않은 일이다.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그저 편하자고 그러는 게 아니다. 부조리가 인식되었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으므로 우선 나의 삶부터 바꾸려는 것이다. 그런 우리 부부를 보고 어떤 이들은 이기적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기적일진 모르지만 당신들 역시 다른 면에서 이기적이다. 손위 어른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주변으로부터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전통과 관습이라는 명분 때문에 자기 자신과 배우자를 혹사시키며 부조리를 답습하는 모습을 자녀 세대에 그대로 노출하는 행위에 이기심이 조금도 없다고 할 수 있는가?
82년생 김지영들이 선배 여성들로부터 멘탈을 지적 받는다면, 그렇게 차별을 당했다면서도 체제에 순응해 온 그들의 멘탈 또한 지적이 가능해진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지적하고 나서는 사람이 있나? 체제를 견딘 사람들에게는 피해자 프레임이 씌워진다. 피해자는 언제나 선하고 약하게 인식되고, 선하고 약한 사람들은 감히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 그런데 체제를 바꾸려는 피해자에겐 반항아 프레임이 씌워진다. 자기 주장 강하고, 고집 세고, 이기적이고, 드세다는 프레임. 그래서 페미니즘은 욕을 먹는다. 꼴페미니 메갈이니 별별 혐오 표현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며 욕을 먹는다. 어떤 여자 아이돌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악플 테러를 당했고, 맘카페에서조차도 여성이 여성을 공격한다. ‘맘충'이란 말을 사용한 이를 비판할 줄 모르고, ‘맘충'이란 말에 상처 받은 김지영 씨를 비난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게 욕을 먹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요즘 여성들이 아직도 유리 멘탈로 보이나? 선배 여성들이 아무리 ‘나 때는' 하여도 과거 그들이 순응하며 겪은 고통과, 요즘의 페미니스트가 저항하며 겪는 고통 중에 무엇이 더 클지, 잘 모르겠다.
“집안 대소사는 네가 챙겨야지. 그런 건 원래 여자가 하는 거야.”
“여자가 살갑고 애교도 있어야지.”
“설거지? 일꾼 시키면 되지. 저기 있잖아, 일꾼.”
하고 시댁 어른이 나를 가리킨 적이 있다. 마침 설거지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일꾼'으로 불리는 바람에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몹시 불편했는데도, 그냥 설거지를 하는 편이 차라리 편할 텐데도, 시댁의 꽃무늬 방석을 가시 방석 삼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식구 중에 나만 콕 지목되어 ‘일꾼'으로 폄하되었는데 냉큼 일어나 설거지를 한다면 나 자신에게 해로운 행동이니까. 시댁에서의 차별을 막아주려는 남편의 노력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니까. 아무에게도 존재를 알리지 않았지만 딸일지도 모르는 뱃속의 작은 아기 씨앗에게도 미안한 행동이니까. "네 엄마는 일꾼 노릇을 착실히 했는데 너는 왜 안 하냐"는 핀잔 따위 가능해지는 거 싫으니까. 잡무는 내 선에서 끊어내야 후임이 주업무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모든 잡무를 끊어내진 못할 테다. 잡무라고,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으니까. 그러고 나면 나는 미안할 것 같다. 감히 ‘나 때는' 하며 과거의 고통을 과시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