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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9. 2020

멋대로 해 놓고 참았다니요

분노 사다리 최하단에 있는 '삐침'

ㅣ삐친 아이는 어떻게 해야


아이가 킨더가튼(유치원 과정)을 졸업할 무렵 아이 친구 세 명이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다. 이름은 S와 L과 M. S는 S의 엄마도 함께 놀러왔고, L과 M은 엄마 없이 아이들만 있었다(이런 경우 아이만 떨구어 놓는다는 의미로 drop off했다고 표현한다. 가령 "You could just drop her off—take a break!"라는 말은 "그냥 아이만 떨구어 놓고 가셔서 좀 쉬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drop off된 L과 M 사이에 의견 다툼이 생겼다. 딸아이와 나, 그리고 S와 S의 엄마가 아무리 중재를 하여도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삐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삐친 아이를 다룰 줄 몰랐다. 내 아이는 삐쳐 본 적이 없고, 내 남편도 삐치지 않으며, 나는 삐쳐 본 지 너무 오래였다.



ㅣ어른부터 그만 좀 삐치셔야


외동이로 자라며 형제를 바라던 순간은 주로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벌일 때였다. 부부싸움 중에 고성이 오가고, 누군가가 물건을 던지고, 누군가가 상대의 뺨을 때리고, 누군가가 별안간 나를 붙들고 이혼 시 누구를 따라가겠느냐고 다그칠 때, 아이로서 그 상황을 오롯이 겪어야 하는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싸움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간의 냉전을 거친 후 언제, 누구에 의해서인지 모르게 대화가 재개되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냉전 기간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다른 집은 부모가 싸우면 자식들이 애교 부리며 화해도 시켜 준다는데 넌 못 하냐"는 핀잔도 들었고, 아버지가 돌연 집을 나가면 "아빠가 나가는데 보고만 있느냐"는 어머니의 비난도 들었다. 괜히 분위기를 띄우려고 수다를 떨었다가 "그런 얘길 지금 뭐 하러 하느냐"는 타박도 듣고. 두 사람 사이에 연락책이 되어 왔다갔다 말을 전하거나, 서로에 대한 험담을 들어 줘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냉전은 수동공격적(passive-aggressive)인 싸움이다. 조용하고 잠잠하니 싸우지 않는 것 같지만, 아무 말 없이 무시만 하는 그 태도, 단단히 삐쳐 있는 그 태도 자체가 일종의 공격인 셈이다. 개리 챕맨(Gary Chapman)과 로스 캠벨(Ross Campbell)의 <아이들을 위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The 5 Love Languages of Children: The Secret to Loving Children Effectively>에는 분노를 표현하는 여러 방식을 바람직한 순으로 나열한 ‘분노 사다리(the Anger Ladder)’제시되어 있다. 분노 사다리에 따르면 수동적 공격, 즉 '삐침'은 분노의 여러 가지 표현 방식 중에서 가장 해로운 방식이다. 삐침으로 일관하느라 억압된 분노는 가족 간에 지속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학교나 직장에서도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분노를 지혜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자녀에게 보여 주지 못하게 된다.


분노 사다리의 가장 상단에 있는 표현법, 그러니까 가장 현명한 분노 표현법은 분노를 유발한 원인과 주된 불만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논리적인 사고로 해결책을 강구하며 기분 좋은 방식(예: 명령 대신 부탁)으로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상단에서 한참을 내려가 열네 번째 방식은 다른 요인으로 분노를 전치하고 물건을 파괴하며 언어적, 신체적, 정서적 학대가 동반되는 불쾌하고 요란한 방식이다. 이보다도 해롭다고 판단되어 열 다섯 번째인 최하단에 기재된 방식이 바로 수동공격적 방식, 즉 냉전 또는 '삐침'이다. 



ㅣ싸움까지 은혜라니


언젠가 어느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질문자는 싸움이 잦은 부모 밑에서 자라 내면의 고통이 많았는데 이에 대해 스님께서는 '그런 갈등 속에서도 질문자를 버리지 않고 키워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는 요지의 답변을 하셨다. 다른 영상을 살펴 보니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편에 서기보단 질문자와 반목하는 상대방의 편에서 답을 하신다. 그러므로 '부부싸움이 잦아 아이와의 관계마저 어려워졌다'는 질문자가 있었더라면 '아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싸움을 멈추라'고 하셨을 테다. 


불교에서 설파하는 자비의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스님의 말씀대로 부모에게 그저 감사함으로써 자신의 마음도 위로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무교로 살아온 범인(凡人)이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런 방법은 도통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자녀 앞에서의 부부싸움은 명백한 아동학대인데 그걸 감사히 여기라고? 술에 취하면 나를 붙들고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누굴 따라 갈 거냐"며 낄낄거리던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서울 친구 중엔 부모가 이혼한 애들도 많지?"하고 몇 번이나 물으시며 아직 이혼하지 않은 당신들을 꽤나 헌신적인 부모인 양 치켜세우셨다. 친구 중 아직 이혼 자녀가 없다는 나의 대답에 아버지는 매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시면서도 "다 자식 때문에 사는 것"이라며 내게 부담을 지우셨다.


허구한날 벌인 싸움들과 그로 인해 자식이 겪은 공포가 부모의 인내와 은혜로 포장되다니.


그런 포장은 개나 주자고, 나는 유년의 나를 위로한다. 너는 애교로 부모를 화해시킬 의무도 없었고, 아버지가 집을 나갔던 것도 네 잘못이 아니며, 냉전 속에서 연락병 노릇 따위 하지 않아도 됐었다고. 네가 성인이 되도록 계속된 그들의 싸움은 너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그들의 충만한 자기애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덕분에 너는 다른 어른이 되었다고. 분노 사다리 하단에 있는 열네 번째, 열다섯 번째와 같은 짓들, 네 부모가 네게 한 짓들을 너는 네 가족에게 하지 않고 있다고. 그러니까 이제 괜찮다고. 오랫동안 고생 많았다고, 나는 유년의 나를 위로한다.



ㅣ삐치는 이들의 주변은


L과 M 사이의 수동공격적인 대립은 L과 M의 엄마가 와서야 종료되었다. 


"다툰 것도 모자라서 Jin이 개입할 때까지 화해를 안 해? 오늘 정말 네게 실망이다. 어서 친구에게 사과하고 Jin한테도 사과해!"


미국 엄마가 남들 앞에서 그렇게 엄하게 자식을 다그치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괜히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L과 M은 그렇게 혼이 나고 밖으로 나서자 언제 싸웠냐는 듯이 손을 잡고 뛰어다녔다. 


그런데 M의 엄마 말에 따르면 M은 귀가 후 2차로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며칠 후 우리 가족은 타주로 이사를 했고, 그 날은 S와 L과 M이 우리 집에서 논 마지막 날이 되었다. 


요즘도 가끔 그 날을 생각한다. 화가 나자 마자 삐쳐서 돌아서던 두 아이. 그리고 나머지 두 아이가 느꼈을 무력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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