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라며 내로남불하는 어른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담임 선생님과 면담하는 친구를 위해 교무실 앞에서 또 다른 친구와 서서 기다린 적이 있다. 나는 새로 자른 머리가 어색하여 연신 "거울이 보고 싶다"고 투덜대다가 교무실 맞은편의 교사용 화장실 앞에서 "거울... 거울..."하고 중얼거렸고, 함께 있던 친구는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장실 문이 안쪽에서 벌컥 열렸다.
내가 "깜짝이야" 하고 비켜서자 화장실에서 나온 교사는 "너 지금 여기에 들어가려고 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는 나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친구에게까지 "이 애가 방금 교사용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느냐"고 물었다.
친구 역시 고개를 젓자 그녀는 "그럼 왜 놀랐느냐"고 나를 추궁했다. "거울이 보고 싶어서 그냥 앞에 서 있었을 뿐"이라고 답하였더니 "그러니까 거울을 보려고 들어가려 했던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당시 나는 지금보다도 키가 작아 150cm 중반대였는데 그녀는 나보다도 작았다. 그녀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삿대질하는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난다. '설사 들어가려 했다 해도 뭐가 그리 대수냐'는 말이 혀 끝에서 맴돌았지만 그저 그녀를 내려다보며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말투와 눈빛이 '버릇이 없다'며 내 팔을 붙들고 중앙 현관으로 끌고 가 훈계를 이어갔다.
그녀의 밑도 끝도 없는 설교는 담임 선생님의 중재가 있은 후에야 종료되었다. 이후 그녀가 전근을 가기까지 2년 동안 누군가가 그녀에게 붙잡혀 야단 맞고 있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한 번은 그녀가 학생의 머리 쪽으로 팔을 뻗었는데 손이 미처 닿지 않자 점프를 뛰면서 학생의 옆통수를 때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점프를 하면서까지 꼭 머리를 때려야 하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그 의지를 좀 다른 데에 쓸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교사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처지이긴 하나 그녀의 개인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각종 근거 없는 비난과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시달렸던 학생들의 처지도 안타까웠다. (사족이지만 '뇌'가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어찌 타인의 '머리'를 타깃하여 때리는지,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버릇이 없다'는 말은 어른에게 몹시 편리하다. '버릇이 없다'는 말로 자신의 분노는 분출하면서 아이의 분노는 억압하기에 편리하고, 아이에게 엉뚱한 누명을 씌워 놓고 '버릇이 없다'는 말로 책임을 전가하기에도 편리하다. 시비를 걸자면 말투부터 눈빛까지 '버릇이 없다'는 말로 꼬투리 잡을 수 있다.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의 언행은 전혀 버릇 있지 않으면서.
아이는 도덕적으로 완전 무결 공손해야 하고, 어른은 제멋대로 왔다 갔다 부도덕해도 되는 이중잣대가 이렇게 편리하게 합리화된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아동학대는 총 2만 2367건이었다. 이 중 친부모에 의한 학대는 1만 6386건, 무려 73.3%를 차지한다. 아동학대로 법정에 서는 부모 중 상당수는 자신의 폭력이 훈육이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사랑의 매'라는 표현을 쓰겠지.
반면 교사나 베이비시터 등 대리양육자에 의한 학대는 14.9%에 불과한데 한국에서는 친부모에 의한 학대보다 대리양육자에 의한 학대가 훨씬 더 큰 이슈와 분노를 양산한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것과, 남이 자식을 때리는 것에 대한 감정의 온도 차이가 아직도 극명하다.
나의 부모님도 집 안에서 체벌과 욕설이 습관이셨으면서 내가 바깥에서 꾸중을 듣고 오면 상당히 분개하셨다. 앞서 소개한 교사 화장실 사건에 대해서도 그날 저녁 부모님께선 "그 선생 이름이 뭐냐"며 분통을 터뜨리셨다. 어머니의 경우 "그러게 거울을 보고 싶다는 말을 왜 했느냐"며 그 분노를 내게 푸셨고.
체벌은 어른의 분노에서 시작된다. 분노에 사로잡힌 어른은 훈육을 빙자하여 아이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다가 손찌검을 한다. 처음에는 엉덩이나 머리를 한두 때 때리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폭력에 둔감해지면서 체벌의 강도가 점점 거세어진다. 게다가 폭력이란 분노를 해소시키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키는 면이 있어 때리면 때릴 수록 더욱 화가 치밀고, 그래서 더 많이 더 세게 때리게 된다. 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셔서, 선 채로 뺨을 맞던 내가 바닥에 쓰러지면 거기에서 멈추지를 못하시고 발길질로 폭력을 이어 가셨다. 어머니가 고삐가 풀리고 이성을 잃으셨다는 것을 나는 맞는 와중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집에서 마지막 체벌이 있은 지 스무 해가 흐른 지금, 어머니는 체벌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내가 각 사건의 인과관계와 사용된 도구들을 나열하여도 어머니는 그런 일들이 애초에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거짓말을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나의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상황을 조작하기 위해 말을 교묘하게 꾸며내곤 하셨으니까. 집 안에서 드러내는 민낯과 집 밖에서 쓰고 다니는 가면 사이에서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하며 사셨을 테니까.
거짓말이 아니라면 기억이 잊힌 이유는 간단하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는 화 내면 안 되지만 나는 화 내도 되고, 너는 말대꾸도 하면 안 되지만 나는 폭력까지 휘둘러도 되는, 이중잣대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 '사랑의 매'라 포장하고 미화시켜 죄책감 따위는 들어설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죄책감을 느꼈더라면 절대 잊지 못했을 거다. 내가 내 아이를 때린 기억을 잊을 수 없듯이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우리 가족에겐 집도 차도 없었다. 다행히 남편의 학교 선배가 될 한국인이 방을 빌려 주어 그곳에 잠시 머무르기로 하였다. 그 곳 역시 여느 미국 집처럼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의 모든 물건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방 주인의 것이었다. 그 때부터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만지지 마, 우리 꺼 아니야."
"가만히 앉아서 마셔. 카펫에 쏟으면 안 돼."
"만지지 말라니까. 떨어지면 깨져."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커다래지는 헤라클레스의 사과처럼 나의 잔소리도 하면 할수록 늘어만 갔다. 말과 정신의 경계는 희미했고, 스스로의 잔소리에 짜증을 느낀 나는 다른 잔소리까지 해대었다.
"엄마 지금 힘드니까 이따가 얘기하자."
"식당에서 화장실 다녀왔잖아. 좀 참으면 안 돼?"
"그렇게 쪼그려 앉으면 화장실 바닥에 원피스가 끌리잖아!"
별의별 일로 신경질이 끓어올라 아이에게 화를 내었다. 매일 밤이 반성의 시간이었으나 종국엔 반성이 부족했나 보다. 두 달여 간의 남의 집 살이를 끝내고 월세 아파트에 들어간 어느 날 나는 사고를 치고 만다.
남편은 개강을 앞두고 각종 오리엔테이션에 자주 집을 비웠다. 새로운 아파트를 청소하는 일도, 한국에서 배송된 짐을 정리하는 일도 대부분 내 몫이었다. 한 번은 방 안의 책장에 아이의 책을 꽂고 있었다. 정리가 완료되자 아이는 책들을 훑어 보더니 책장을 거실로 옮겨 놓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는 "힘드니까 그건 내일 하자"고 하였지만 아이는 재차 책상을 옮겨 달라고 졸랐고, 그러자 문득 '오늘 하든 내일 하든' 하는 생각이 들어 방금 꽂은 책들을 몽땅 도로 빼낸 뒤에 육중한 4단 책장을 거실까지 낑낑 옮겼다. 그러곤 방금 빼낸 책들을 역시 거실로 낑낑 옮겨와 하나씩 다시 꽂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너도 하나씩 꽂아."
아이는 싫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책의 양이 방대하여 만 3세라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을 듯싶다.)
"너도 해야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렇게 보기만 할 거야?"
아이는 그렇다고, 보고만 있겠다고 하였다. 나는 책 한 권을 건네며 아이의 어깨를 밀쳤다.
"너도 꽂아."
밀쳐진 아이는 뒷걸음질을 치곤 놀라서 울었다. 나 역시 갑자기 아이에게로 향했던 나의 손과, 이후의 상황에 아연해졌다. 미안하다고 달래며 사과하자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쳤다. 그러곤 언제 울었냐는 듯 책들을 꽂아주었다.
그 날 일이 그 날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리석게도 나는 같은 실수를 바로 다음 날 반복하고 만다.
그 날 아이는 자꾸만 "나는 남자야, 여자야?" 하고 물었다. 여자라고 답해 주어도 아이의 질문은 도통 끝날 줄을 몰랐다.
"나는 남자야, 여자야?"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거푸 반복된 물음에 여자라고 답해 주며 나도 모르게 아이의 뺨을 툭 때렸다. 아이는 아프지는 않은지 울지는 않았으나 영문 모를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울고 말았다. 한참 동안 울면서 사과하고 한참 동안 울음을 참으며 재워 주었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모델의 행동을 관찰한 후 그 관찰된 행동을 시행해 볼 기회가 없었거나 강화가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모방 학습이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켜 ‘무시행 학습(no trial learning)’이라 정의했다. 나는 체벌을 예행해 본 적도 없었고 누군가가 보상을 제공하며 강화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를 때리고 말았다. 이후로는 같은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오랫동안 자신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은 어머니께 어린 나를 어떻게 그렇게 때릴 수 있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했다"고 하셨다.
부모라면 99.99%가 자식을 사랑한다. 문제는 자식 사랑보다 자신 사랑, 자기애가 넘쳐서 벌이는 짓들이다. 가령,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다면, 그러다 결국 내 생각만 주구장창 떠든다면 그것은 자식 사랑이 아니라 자신 사랑이다. 아이에게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면서까지 나의 생각을 강요한다면 극강의 자신 사랑이고.
아이를 올바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알아야 하고, 아이를 알려면 아이를 이해해야 하며, 아이를 이해하려면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면 나의 생각을 먼저 내려 놓아야 한다. 내려 놓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의 말에 집중하는 연습, 아이를 있는 그대로 믿는 연습,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연습, 내가 옳다는 착각을 버리는 연습. 내려 놓음은 저절로 자연스레 완성되지 않는다.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노력을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 자기애를 저 쪽 구석으로 치워다 놓는 연습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애가 끼어들지 않는 자식 사랑이란 욕하고 싶을 때 욕하고 때리고 싶을 때 때려서는 이행되지 않는다. 부모가 멋대로 행동면서 자식이 묵묵히 따라주기를 바란다면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고자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아이가 알아 주면 좋겠고, 언제나 내 생각을 따라 주면 좋겠고, 그렇게 아이를 내 입맛대로 움직이면서 내 권위를 인정 받고 효능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많은 부모가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받아 자기애를 완성한다.
넌 가만히 있어.
넌 시키는 대로만 해.
다 너를 위한 말이야.
이렇게 답정너가 되어 자신의 니즈를 아이의 니즈보다 자연스레 앞세운다.
반면 아이는 아무리 어려도 부모를 사랑한다. 그래서 부모가 원하는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해내기 위해 일찍부터 애를 쓴다. 시키는 대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시키는 대로 존댓말을 사용하며, 시키는 대로 입을 다물고, 시키는 대로 밥을 먹는다. 시키는 대로 어린이집을 가고, 시키는 대로 학교를 가고, 시키는 대로 학원을 가고, 시키는 대로 시험을 친다. 이 모든 규율과 관습이 어린이에겐 무언가 불공평하여 썩 내키지도 않고 부자연스럽지만 웬만해선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시키는 대로 되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노력을 지속한다.
이만큼이나 말을 잘 들어 주는데, 이만큼이나 노력해 주는데, 이만큼이나 사랑을 주는데 자기애 충만한 어른들은 더 많이 바라고, 더 받지 못하여 안달이다. 자기애로 얼룩진 자식 사랑을 희생이니 헌신이니 하는 단어로 포장하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더 받아 내어 자기 니즈를 꽉꽉 채우려고 머리를 굴린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다음 날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일러 준 적이 있다. 그 날 저녁 나는 친구에게 주기 위해 종이학을 접었는데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내게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야단을 치셨다. 뻔뻔하게 제 쪽에서 먼저 생일을 알려 주다니, 선물을 원하는 마음이 속 보인다고, 친구까지 덩달아 흉을 보셨다. 나는 기분이 상하여 종이학을 몇 마리 접다가 관두었고 다음 날엔 친구에게 미안한 나머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그 날 나는 스스로 기념을 챙기거나 선물을 바라는 행위는 뻔뻔스러운 짓, 이라는 메시지를 얻었기에 이후로는 부모님께서 부부 싸움을 벌이느라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를 지나치셔도 서운해 할 줄을 몰랐다. 그러다 6학년이 되던 해의 어버이날, 어쩌다 보니 빈손으로 귀가를 하게 된다. 아침에는 등교하기에 바빴고, 학교에서는 예년과 달리 카네이션 만들기를 지도하지 않았으며, 하교 후엔 학원까지 다녀오느라 배가 고팠다. 사정이 어쨌든 어머니는 나의 빈손에 화가 나셨다. 당장 나가서 뭐라도 사 오라며 나를 밖으로 곧장 내보내셨다. 나는 땅거미 속에서 차마 꽃집까지 가지 못하여 근처 마트에서 과자를 사서 선물해 드렸다.
어린 아이가 생일을 알리는 행동은 뻔뻔한 짓, 친구를 위해 선물을 만드는 일을 쓸데없는 짓으로 비하되었지만 부모가 어버이날에 선물을 받고자 아이를 거뭇한 저녁 속으로 내모는 행위는, 어머니의 머릿속에서 '교육'으로 미화되었으리라.
나는 화 내도 되지만 너는 화내면 안 되고
나는 때려도 되지만 너는 때리면 안 되고
나는 네 말 안 들어도 되지만 너는 내 말 들어야 되고
네가 남한테 주는 건 안 되지만 나한테는 꼭 줘야 하고
Do as I say, not as I do (내 행실은 따르지 말고 내 말만 따르라).
온 우주에서 이중잣대, 내로남불의 끝판왕은 어른들이다. 그러면서 요즘 애들이 버릇이 없다고 혀만 끌끌 차고 계신다. 당신들이 애들한테 버릇 없이 군 것은 기억도 못하시고, 지금도 당신들의 자기애가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생각도 못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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