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체벌 금지 법안 통과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댓글 반응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반대 의견이라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눈이 의심될 정도였다.
인생을 겨우 40년도 채 못 되게 살아 봤지만, 세상엔 버릇 없는 아이보다 버릇 없는 어른이 더 많다. 지하철에서 다른 승객에게 시비 거는 인간들도 어른이고, 홍대 앞에서 꽐라되어 길바닥에 누워 있는 인간들도 어른이다. 아이들은 버릇 없는 짓을 할 때 숨기라도 하지, 어른들은 버릇 없는 짓을 대놓고 하면서 지들이 마땅히 그래도 되는 줄 안다. 아이들 세상의 일진, 폭력, 왕따 문제에 손가락질하면서 어른들 세상에서는 갑질, 사기, 태움 행위가 점점 지능화된다.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는 성인이든 미성년자든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심기 정도만 건드리는 행위는?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대들었다고 해서 “너 좀 맞자" 할 수 있나? 상대가 어른이면 기분 나빠도 못 때리면서, 상대가 아이이면 '버릇'을 운운하며 쉽게들 때리려고 한다.
아이는 만만하니까. 아이들은 물리적으로 연약할 뿐더러,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발달되지 않았다.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종아리에 빨간 줄이 생기도록 회초리를 맞을 때, 아이들은 그 처벌이 과연 합당한지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경험치와 분석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따지거나 저항할 줄도 모른다. 평소 체벌을 당하지 않는 아이라면 억울함이나 고통을 호소할지 몰라도, 평소에도 맞고 자란 아이들은 폭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조차 상실한다. 누군가가 폭력을 가하면 아이는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는 편이 편하다. 상대는 힘 센 어른이고, 나는 상대를 변화시킬 힘이 없기에, 내가 내 잘못을 고치기만 하면 이 폭력이 끝나리라 믿고 희망을 갖는 쪽이 아이 입장에서는 마음 편하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남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희한하게 자책을 하곤 한다.
그러면 합당한 체벌 수준을 아이와 미리 정하고 딱 그만큼만 때리면 될까? 우선, 딱 그만큼만 때리지 못할 어른이 많다. 인간은 대부분 의지가 강하지 못하여 매순간 감정에 휩싸인다. 부모도 마찬가지. 아이가 잘못을 하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일단 잔소리를 한다. 한 번만 얘기해도 될 것을, 1절과 2절도 모자라 3절, 4절, 5절까지 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게 길게 떠들어봤자 아이에겐 전혀 도움되지 않는데 부모 본인의 분을 풀어내느라고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더 난다. 잔소리가 잔소리를 부르는 셈.
체벌도 마찬가지다. 화가 나서 사람을 때리면 분이 풀리기보다는 오히려 부아가 더욱 치밀어서 두 대, 세 대, 네 대 더 때린다. 폭력이 분노를 조장하고, 분노가 폭력을 조장하고, 소름 끼치는 악순환의 고리.
당신은 안 그렇다고? 세 대 때리기로 했으면 딱 세 대만 때린다고? 그런데 세 대 때리기로 한 결정에 과연 아이가 진정으로 동의했을까? 말대꾸에는 세 대를 맞기로 한 결정이 합당한지 아닌지 아이는 판단할 능력이 없다. 화난 부모가 “너 세 대 맞아" 하니까 그냥 꾸벅 숙이고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그런 아이는 맞고 나서 마음에 앙금이 남는다. 반대로 아이가 “세 대는 싫다"라고 했다면? 이미 분노 감정에 휩싸인 부모가 “그래, 네 의견을 존중하마. 세 대는 너무 많구나" 하고 순순히 타협할까? 삿대질에 고성을 쏟아내다가 제 멋대로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때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요즘 부모들은 우리 가정을 비롯해 많은 집이 아이를 전혀 때리지 않고 키운다. 이번 뉴스 기사에서 체벌을 옹호하는 댓글들은 도저히 요즘 부모가 썼다고 보기에 힘들었다. 내가 미국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주변의 한인들도 한국의 친구들도 체벌로 교육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애들이 싸가지가 없다고? 내 아이의 경우 유년의 나보다 싸가지가 많다. 부모님에게서 보고 배운 대로 분통을 터뜨리고 짜증을 내던 나와는 달리, 아이는 욱하는 일이 없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고, 아쉬우면 아쉽다고 말한다. 매를 들고 달려드는 사람이 없으므로 학교나 집에서 저지른 잘못도 쉽게 고백해 온다.
소리 쳐서 키운 아이는 소리 쳐야 말을 듣고, 때려서 키운 아이는 때려야 말을 듣고, 말만 해서 키운 아이는 말만 해도 듣는다. 물론 말만 해도 듣게 하려면 부모도 아이도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울면서 떼 쓰는 아이가 스스로 지쳐버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 보아야 하고,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법으로 훈육하고자 매순간 머리를 굴려야 한다. 기분 나쁘다고 언성을 높이거나 무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부모 자신부터 자제해야 하고.
그러므로 애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분들, 그런 분들은 당신이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미 오랜 시간 아이를 때리며 키웠거나,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거나, 맞고 자란 과거의 기억이 미화되거나 망각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대로 아이들은 때리면 말을 잘 듣는다. 교실 안이 소란스러울 때 선생님이 단 한 명만 본보기로 뒤통수를 후려쳐도 나머지 학생까지 잠잠해지곤 했다.
무서우니까.
무서우니까 지키는 규칙, 무서우니까 지키는 예절, 무서우니까 하는 숙제, 무서우니까 하는 공부. 어린 나이에는 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고 어른이 되면 무섭게 군기 잡는 상대를 경멸하기 마련이다. 그럼 사춘기 이전까지만 때리겠다고? 그렇다면 아이 입장에선 맥락이 어긋나 혼란스럽다. 사춘기가 되어서야 돌연 대화를 시도하는 부모에게 ‘헐, 갑자기 왜 친한 척? 왜 젠틀한 척?’하고 뒷걸음질을 치겠지. 뒷걸음 치면 그나마 다행이고, 뒷걸음도 못 친 채로 앙금 쌓인 어른이 되면 괜히 지하철에서 시비 걸고 홍대 앞에서 꽐라가 된다.
어른이라면 신중해지자. 쉬운 방법이 좋은 방법은 아니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은 치외법권적 ‘천륜'의 영역이 아니며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재 대상이어야 한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체벌에 대한 다른 글: https://brunch.co.kr/@jin8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