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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08. 2020

호기심이 생명입니다

뒤처지지도 나서지도 않는 기쁨

요즘 미국의 작은 비영리 단체에 스태프로 소속되어 재능 기부로 번역일을 하고 있다. 전 직장은 퇴사한 지 이제 8년이 되었으니 조직의 일원이 되어 본 지 오랜만이다. 전 직장은 대기업이었고, 퇴직 후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MS 오피스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일하는 단체는 규모가 작다 보니 조직 전체에 걸쳐 사용되는 여러 프로그램이 한 눈에 보인다.  


스윗(Swit)이라는 협업 툴로 스태프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일정 관리가 이루어지고,

슬랙(Slack)이라는 메신저에 채널을 개설하여 단체 이용자들과 소통한다.

웹사이트는 워드프레스(WordPress)를 사용하다가 최근 스퀘어스페이스(Squarespace)로 이전했고,

어젠다와 매뉴얼은 노션(Notion)에 차곡차곡 기록되며, 문서는 구글닥(Google Docs)으로 공유한다.

메일침프(Mailchimp)를 통해 한 달에 한두 번 뉴스레터가 발송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홍보에 사용되는 이미지는 캔바(Canva)에서 제작한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회의는 줌(Zoom)으로 진행한다.


거액을 들여 구입하거나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은 없다. 모두 매월 일정액의 사용료만 지불하면 되는, 클라우드 기반의 플랫폼이다. 온라인 상에서 사용료만 내면 개발에서 마케팅까지 조직 전체의 운영이 가능하다니, 바야흐로 클라우드의 시대, 구독 경제의 시대다.


사실 나는 위의 프로그램에 대해 모두 알 필요는 없었다. ‘스윗'으로 번역 요청을 받아 ‘구글닥’에 번역을 한 뒤 완성된 ‘구글닥’을 ‘스윗'에 공유만 하면 되니까, 결국 나는 ‘스윗'과 ‘구글닥'만 쓸 줄 알면 되었다. 그리고 플랫폼이 하도 많아 골치가 아팠다. ‘아휴, 골치 아파'하고 고개 돌리면 그냥 모르는 채로 지낼 수도 있었다.


그래도 호기심이 스물스물 올라와서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래서 지난 주엔 ‘메일침프'로 직접 뉴스레터 작성도 해보고, ‘캔바'에서 이미지와 영상도 만들어보았다. 골치 아파도 모르기보다는 아는 편이 재미있다(게다가 막상 해 보면 엄청 쉽다). 내 업무와 관련성은 거의 전무하지만 웹사이트 이전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이 하는 논의도 들어 보았다. 그다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런데 신선하게도 엔지니어들 역시 플랫폼 전환 과정에서 몇몇 에러에 골치 아파했다. 나는 IT 알못인 나만 골치 아픈 줄 알았는데, 엔지니어들은 딱 보면 척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엔지니어들도 골치 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두들 문제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고, 이것 저것 시도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기뻐했다.

 

by Jin

변화란 누구에게나 골치 아픈 거였다. 전문가라고 해서 골치 아프지 않은 게 아니었다. 어쩌면 전문가들이 더 골치 아플지 모른다. 직접 분석하고 해결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 ‘골치 아픔'은 호기심으로 정복된다.

왜 이럴까?
어떻게 하면 될까?
아까는 그렇게 해 봤으니 이번엔 이렇게 해 볼까?

문제에서 해결에 이르기까지, 주 동력은 호기심이다. 아무리 골치 아파도 일이 재미있는 건 호기심 덕분이다. 세상의 변화 역시 어지럽고 골치 아파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반대로,

아휴, 골치 아파서 싫어.
난 몰라, 그런 거.
이제 와서 알아 봤자 뭐해?

하면 재미도 없거니와 도태가 된다. 새로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세상과의 공감대도 줄어든다. 요즘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틱톡(TikTok)이 인기라길래 남편과 함께 틱톡 앱을 좀 들여다보았다. 영상을 한두 개만 보았을 땐 ‘이런 게 왜 인기지?’ 싶었다. 거기에서 생각을 멈춘 채로 “야, 요즘 애들은 틱톡인지 뭔지 그걸 왜 보고 앉아 있냐? 참나" 하면 자기 시야에 갇힌 꼰대, 퇴물이 되는 거다. 반면 호기심을 계속 가동시켜 ‘이런 게 왜 인기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서히 이유가 보인다. 영상이 짧아서 부담이 없는 반면 짧은 시간 동안 강하게 재미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다른 여러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보인다. 검색을 해 보니 틱톡은 음원 사용도 자유로워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유튜브보다 영상 제작이 수월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개인정보 문제로 미국에서도 논란이 많으나 그건 논외로…)


새로운 트렌드에는 눈과 귀를 닫으면서 옛날 이야기는 공감 받기를 원하는 어른들이 있다. 반대로 새로운 트렌드를 아신다고 당신의 세련됨을 과시하시는 분들도 있고.


중도(中道)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

타인의 일, 타인의 기호를 이해하는 기쁨,

그렇게 공감대가 넓어지는 기쁨,

골치 아파도 시도해 보는 기쁨,

시도해 보니 할 만하다는 기쁨,

쓸모없는 듯해도 내 안에서 반짝이는 호기심,

아무런 과시 없이 조용히 충족하는 호기심,


이 정도면 중도가 지켜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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