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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30. 2020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련하고도 씁쓸한 K선생님의 기억

지금으로부터 스무 해 전, 고등학교 신입생 때 담임이었던 K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사뭇 설레었다. 학창 시절 내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영어였는데 처음으로 영어 교사가 담임이 된 것이다. 게다가 K선생님은 영어 수업이 가능하셨다. 선생님은 “Open your textbook to page 5(교과서 5쪽을 펼치세요)”와 같은 말로 수업을 시작하셨고,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에겐 숙제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셨다. 


“Tell me. Did you forget about it?(말해 봐. 잊어 버려서 못 했니?)”


이라고 물으면 학생들은 영어로 대답을 해야 했다. 한 번은 누군가 더듬더듬 이렇게 답했다.


“I didn’t forget, but I slept(잊어 버리진 않았는데 잠이 들었어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That can happen. That can happen(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하고 대답하셨다. 무릇 그 시절 한국의 교사라면 “잠든 게 자랑이냐? 자랑이야? 네가 지금 잠이 오냐? 그 성적으로 잠이 와?” 하였을 텐데(덤으로 학생의 머리를 교과서로 툭툭 내리칠 수 있다) “That can happen”이라니. 선생님은 무언가 달라 보였다. 


당시 나는 영어에'만' 관심이 지대했다. 살면서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고 그간 만나 본 외국인이란 영어 학원에 딱 한 명 있던 캐나다 국적의 강사였는데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고작 한 시간뿐이라 감질나는 면이 있었다. 게다가 영어를 제대로 접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외고와 민사고를 지망하였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원서조차 써 보지 못한 채로 일반고에 진학하여 현생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학교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다니. 이젠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어느 날 받아쓰기 시험에서 선생님이 ‘guarantee’를 ‘guarant’라고 발음하신 것이다. 차라리 한국식으로 ‘개런티'라고 해버렸으면 나았을걸, 괜히 'r' 발음을 굴리며 말끝을 흐리다가 ‘guarant’라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셨다. 출제 단어가 미리 고지되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 못 받아 적을 뻔했다. 이후로 선생님의 단점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선생님은 짧은 문장만 영어로 구사하시고 말이 길어지면 한국으로 전환하셨다.


“I once had an English interview. 그런데 그 인터뷰를 할 때…”


하면서 영어로는 운만 띄우고 나머지는 한국말로 때우시는 거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운조차도 영어로 띄우지 않으셨다. 




그런 선생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것이 있으니 바로 매일 새벽 MBC FM에서 방송하던 <Let’s Go English>를 청취하고 그날의 주요 문장(실생활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말이나 당시 유행하던 문장을 영작하는 코너였다. 가령, 김민희가 출연한 이동통신사 CF로 유행어가 된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는 “Love is on the move”로 번역되어 방송되었다)을 반 아이들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Let’s Go English>를 소개하시기 전부터 그 프로그램을 거의 매일 듣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는 나로 하여금 매일 그날의 문장을 읊게 하셨다. 


“Today’s sentence is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자, Jin, 영어로 해 봐.”


하고 지목을 받으면 


“Love is on the move.”


하고 대답을 해야 했다. 주목 받기를 벌레보다도 싫어하는 나는 본의 아니게 매일매일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이는 것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학구열이 높은 몇몇 친구가 <Let’s Go English>를 청취하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의 지목은 여기저기로 분산되었으며, 당신이 프로그램을 듣지 못하신 날은 우리에게 물어 배우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Let’s Go English>를 듣지 않았다. 전날 체육대회에서 무리한 탓에 일찍 기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그 포기에 대해 후회는 전혀 없었다. <Let’s Go English>는 재미로 청취하는 것이지 의무감으로 청취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날 선생님은 나의 가벼운 마음에 재를 뿌리셨다.


그날도 선생님께서는 그날의 문장을 한국어로 읊고는 아이들을 한 명씩 지목하셨다. 지목 받은 아이들 모두 “오늘은 듣지 않았다"고 답하였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나를 지목하셨을 때 나도 역시 같은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입술을 굳게 다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Jin까지 나를 실망시켰어.”


아니, 내가 겨우 하루 아침 라디오를 듣지 않은 일로 저 이가 왜 실망하지? 게다가 나를 콕 집어 실망을 표현함으로써 저 이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Let’s Go English>를 듣는 것? 그것을 저 이가 내게 왜 요구하지? 대체 왜 하루도 빼놓지 않고 <Let’s Go English>를 들어야 하지? 이후로 <Let’s Go English>를 들을 때마다 영문 모를 의무감이 느껴졌고, 의무감은 재미를 조금씩 지워 갔다. 결국 청취를 완전히 그만두고 나서는 마음이 후련했다. 매일 아침 지목을 받을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나를 향해 입술을 굳게 다무는 선생님의 표정을 지켜 보는 일이 통쾌하기도 했다. 




그 해 두 번째 학기에 나는 <해리 포터> 원서에 빠져 있었다. 당시 강원도 C시에는 외서 전문점이 딱 한 군데 있었다. '키다리 영어샵'이란 간판을 단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원서들을 구경하다가 소설책이나 토익 문제집을 구입하곤 했다. 아주 간혹이었다. 외서는 지금도 비싸지만 그때는 더욱 비쌌으니까.


그러다 한 번은 그곳에서 <해리 포터> 원서 1권과 2권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영 관심이 없었는데 이후로 초등생 사이에서 해리 포터 열풍이 불면서 어느 날 무언가에 홀린 듯이 1권을 구입했다. 1권을 완독하고 나서는 망설일 여지도 없이 2권을 구입했다. 당시 내가 재학한 C여고는 오후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이 의무였기에 학교에서가 아니면 독서할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나는 <해리 포터>를 야자 시간에 읽었다. <해리 포터>를 읽으며 재미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내게 공감을 표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해리 포터>가 아직 영화화되지도 않았고 판타지 장르가 인기를 끌기도 이전이었으므로 고등학생들에게 <해리 포터>는 읽어 볼 필요도 없는 유치한 동화에 불과했다. 


그래서 어느 날 K선생님께서 요즘은 어떤 원서를 읽느냐고 물으셨을 때 나는 매우 반갑게 <해리 포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건 마법 이야기 아니니? 그런 책은 단어도 좀... 진짜 영어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어 봐."


그 말에 어쩐지 나는 <해리 포터>를 더욱 열심히 읽었고 3권 원서는 당시 보편화되지도 않았던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서까지 구매하여 읽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 원서를 밤 새워 읽을 때까지 내게 <해리 포터>는 최애 소설이었고, 이제는 내 독서 인생의 가장 긴 추억으로 남아 있다. K선생님이 말한 '진짜 영어'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한 번은 도움이 되도록 만들고자 중요 표현에 밑줄을 쳐 가며 외우기도 하였지만 자꾸만 스토리 속으로 빠져들어 밑줄 치기를 잊어 버리는 바람에 곧 그만두었다) 마흔에 가까워진 지금도 종종 꺼내어 볼 만한 추억거리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2학기 말이 가까워질 즈음 K선생님께선 어딘가에서 뉴질랜드 교포를 섭외하여 신청 학생을 대상으로 원어 강의를 진행하게 하셨다. 전체 1학년 학생 중 스무 명 남짓이 신청을 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야간 자율학습 대신 그 수업을 들었는데 나도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나는 야간 자율학습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영어 학원까지 그만둔지라 학교에서 원어민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 기대 또한 오래 가지 못했다. 강의 수준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계절이나 장래 희망 따위에 대해 토론하거나 발표하는 식이었는데 고등학생의 인지를 자극하기엔 수업 주제가 너무 기초적이었다. 몇 번 수업을 듣다 말고 나는 교무실로 찾아가 K선생님에게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안 돼... 네가 그만두면 다른 애들도 다 그만둔단 말야..."


나는 내 손을 자꾸 쓰다듬는 선생님의 손길과, 수업이 영 쉬우면 문장들을 암기하며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다급하게 대안까지 제시하시는 절박한 목소리가 측은하여 그 수업을 종강 때까지 주욱 들었다. 




선생님의 청에 따라 원어민 수업을 끝까지 들은 건 나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강제성이 느껴졌는지 나는 겨울방학 보충수업 기간에도 선생님이 여전히 못마땅했다. 그 못마땅함은 선생님이 한국어를 요상하게 발음하기 시작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중에 '쇄골' 같은 단어를 '섀골'처럼 발음하시며 "저 원래 한국말을 잘 못해요"하며 활짝 웃으셨다. 나를 비롯한 우리 반 모든 아이처럼 선생님도 토종 한국인이기는 마찬가지셨다. 영어를 사랑하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도하시면서 한국어 발음을 제대로 못 하는 (또는 안 하는) 것에 대해선 애석함이 전혀 없으신 그 모습이 무언가 앞뒤가 바뀌어도 심하게 바뀐 느낌이었다. 외국어를 사랑하려면 모국어부터 사랑해야 한다고 지금이나 그때나 굳게 믿는 나로서는 선생님의 (어쩌면 고의적인) 요상한 한국어 발음이 극도로 낯간지럽고 짜증스러웠다. 


겨울 보충수업이 끝나고 종업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어머니는 직접 준비한 선물을 건네며 종업식 날 선생님께 드리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카드에 적어야 할 내용까지 일러 주셨는데 그 중에는 선물을 내가 직접 구입했다는 거짓말이 섞여 있었다. 나는 카드도 선물도 전해 주길 거부하였다. 그렇게 선물을 주고 싶으면 엄마가 직접 갖다 주라고 하였다. 나의 말에 화가 난 어머니는 하루 이틀 후 직접 선생님을 찾아 뵙고 선물을 전했다. 그러곤 그 날 저녁 내게 역정을 내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대체 어떤 애들이랑 노는지, 얼마나 못된 애들이랑 놀기에 선생님께 선물도 드리기 싫다고 하는지, 그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내가 다 물어 봤다며, 흥분하여 침을 튀기고 언성을 높이셨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말씀은 일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내게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기 위해 어머니는 있는 말 속에 없는 말을 교묘히 섞고는 하셨으니까. 


그날 나는 어째서 내 친구들에게로 불똥이 튀는지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K선생님께 선물을 드리기 싫었던 건 선생님의 유치한 언행과 어머니가 시키신 거짓말 때문이었다. 어른에게 문제가 있으리라 추호도 상상할 줄 모르시는 어머니는, 당신도 역시 교사라 교사가 무시 당하는 꼴을 견디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분노의 화살을 난데없이 내 친구들에게로 돌렸다. 선생님보다도 어머니보다도 훨씬 순수하고 투명한 내 친구들에게. 


종업식 당일, 체육관에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과목별 전교 석차 1등에게 상장을 주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영어 성적이 항상 100점이었기에 상장을 받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영어 과목만 수상자를 호명하지 않았다. 2열 종대로 선 채로 주변 아이들이 의아해했다.


"영어는 왜 안 불러? 너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아마도 1등이 여러 명이라서 상장을 안 주는가 보다고 하였다. 식이 종료된 후 교실에서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도 상장은 수여되지 않았다. 대신 몇몇 아이들에게 초콜릿이 주어졌다. 실장이므로, 부실장이므로, 전체 성적이 1등이므로, 웃음을 주었으므로, 등등의 이유로 꽤 여럿에게 초콜릿이 주어졌는데 나의 영어 성적에 대해서는 초콜릿도 주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경례 후 가방을 챙기려는데 선생님이 나를 호명하시곤 교무실로 따라 오라고 하셨다. 표정과 목소리가 영 차가워서 내가 무언가 잘못을 했나, 하고 따라가 보았더니 이게 웬걸, 체육관에서도 교실에서도 주지 않던 상장을 주신다. 영어 과목 전교 석차가 1등이라 이를 높이 평가하여 이 상장을 수여한다, 는 글귀를 훑고 고개를 들어 보니 선생님께서 입술을 굳게 다무신 채로 나를 보고 계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잘 지내고."


나는 네, 라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이고 교무실을 나섰다. 교실로 돌아가며 기분이 찝찝했다. 체육관에서 상장을 주지 못했으면 그냥 교실에서 줄 것이지 굳이 교무실까지 따로 불러 줄 것은 뭐람? 일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도 없이 상장을 벌점 던지듯이 건네는 이유는 또 뭐고? 표정이랑 말투는 왜 저렇담? 엄마가 며칠 전에 찾아 와서 나랑 내 친구들 흉을 보았다더니 그 일로 아직도 기분이 나쁘신가? 정말 유치한 사람이네.




돌이켜보면 K선생님은 열정적인 교사였다. 잠시나마 영어로 수업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아이들에게 유익한 영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였으며, 원어민 수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열정을 몰라본 것이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실수와 실패에 다시 한 번 집중한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과대평가
그로 인해 지나쳐져 흐지부지되는 열정
학생의 흥미를 꺾어 버리는 강요
부족한 식견으로 인한 잘못된 조언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심

동시대의 다른 어른들에 비해 합리적으로 비추어졌던 그녀가 이렇게 내 머릿속에서 해부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언젠가 역시 해부될 나를 본다. 해부 결과에 실수가 많을수록, 실패가 많을수록, 타산지석으로 삼을 요소가 많을수록 좋다. 실수와 실패가 많으려면 도전을 지속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K선생님의 소식을 들었다. 캐나다로 이주를 하셨다고 했다. 거기에선 또 어떤 도전과 어떤 실패를 하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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