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Aug 03. 2020

벌하지 않아도 알아요

벌이 필요하다는 어른들의 착각

어릴 적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2학년 1반 시절 담임 선생님이었던 P선생님의 이름을 대었다. 그것은 P선생님을 정말로 존경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 그나마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은 유일한 선생님이셨기 때문이었다. 90년대 초중반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어린 나의 눈에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누구냐'는 질문은 어찌나 많이들 묻던지, 당시의 교사들에게 존경이란 짜장면에 딸려오는 군만두처럼, 저절로 얻어지는 디폴트 값이었나 보다. 존경을 헐값에 얻은 그들의 행실은 가관이었다.


1학년 때 담임이던 K선생님은 아무런 서사 포인트 없이 자꾸 똥만 등장하는 희한한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는 것으로 수업 시간을 때웠고,

그는 3학년 때에도 내 담임이 되어 어느 날엔 칠판에 커다랗게 'SEX'라고 써 놓고는 남녀 간의 성행위를 묘사하며 "오렌지족이 많이 하는 짓"이라고 설명했다.

4학년 때 담임이던 S선생님은 어느 날 두 아이가 몸싸움을 벌이자 나머지 아이들로 하여금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보게 한 뒤 거수로 승패를 투표하게 하였다. 또 한 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들을 책상 위에 무릎 꿇리고는 반장에게 몽둥이를 들린 뒤 선생인 자신의 엉덩이를 때리라고 하였다. 반장이 망설이는 한참의 시간 동안 몇몇 아이는 다리가 저린 나머지 "야, 그냥 때려"하고 짜증을 내었으나 반장은 끝내 몽둥이를 휘두르지 못했다. 선생님은 반장을 자리로 들여보내곤 "그냥 때리라"고 한 놈들 목소리를 다 알고 있다며 끝까지 기억하겠다고 했다. 

5학년 때 담임이던 C선생님은 우리 학급엔 멍청이만 모아 놨다고 수시로 불평을 하였다.

6학년 때 담임이던 N선생님은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귀국한 K군을 편애하여 그 아이에게 용돈이랍시고 천 원짜리 지폐를 간혹 쥐어 주었다. 언젠가 교실에서 S양의 돈이 분실되고, 발달 장애가 있는 J군이 도둑으로 몰렸을 때는 자백을 받아내겠다며 J군에게 수십 번 발길질을 하였다. J군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가 무릎을 꿇었다가 발라당 넘어졌다가 무릎을 꿇었다가 하면서도 "훔치지 않았다"는 말에 변함이 없었다. (그 모습에 S양이 울면서 "이제 돈 못 찾아도 되니까 그만 때리시라"고 N선생에게 애원하여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 N선생이 하루는 가정 통신문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가정 통신문을 부모님께 보여 드리지 않고 혼자 작성하여 제출하는 습관이 있었다. 당시 가정 통신문에는 학부모 회의 일자를 고지하고 참석 여부를 체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께 그것을 보여 드리면,


"당연히 못 가지, 뭐하러 물어 봐?"


라고 하셨기에 언젠가부터는 어머니께 묻지도 않고 불참 사유까지 스스로 적어 제출하였다. 그런데 그 날의 가정 통신문은 학부모 회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상단엔 '학생 진로 조사'라는 문구가 있었고 본문에는 아래처럼 두 가지 항목을 작성하게끔 되어 있었다.

학생 희망 진로:
부모님 희망 진로:

'진로'라는 단어를 본래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국어 사전을 뒤져 보았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는 '학생 희망 진로' 란에 내 장래 희망을 적었다. 아마도 작가나 유치원 선생님이라 적었을 테지. 그러곤 어머니께 통신문을 보여 드리며 물었다. 엄마는 내가 무엇이 되면 좋겠느냐고. 어머니는 통신문을 훑더니 언성을 높이셨다. 


"진로잖아, 진로! 장래 희망이 아니라 진로! 진로를 묻는데 무슨 장래 희망을 쓰고 앉아 있니?"

"...... 진로가 뭔데?"

"너 인문계 갈 거냐, 실업계 갈 거냐 묻는 거야!"

"......"

"너 대학 안 갈 거야? 대학 안 가고 공장 다닐 거야?"


대학에 가고 싶다고 답했더니 어머니는 양쪽 란에 모두 '인문계'라 쓰라고 하셨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적어 다음 날 제출하였더니 N선생이 나를 교탁 앞으로 부른다. 그리고 전날의 어머니처럼 언성을 높인다.


"야, 너 인문계가 뭐야? 이거 그냥 니 장래 희망 쓰는 거야! 니가 무슨 인문계 어쩌고 하고 있어!"


나는 인문계라는 글자를 지우고 양쪽 란에 같은 장래 희망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 통신문은 장래 희망을 적는 게 맞더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심드렁하게 "그렇니?" 하신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도 N선생도 자기 시야에 갇혀 있었다.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진로'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인문계 vs 실업계'를 떠올리고는 과연 초등학교에서 묻는 진로도 '인문계 vs 실업계'의 구도일지 재고해 보지 않으셨다. N선생은 학생이 제출한 엉뚱한 답변을 놓고 부모의 잘못된 지도가 원인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그저 고쳐 쓰라고 하면 될 일을 호통까지 쳐 가며 면박을 주었다. 초등학생 주제에 인문계 운운한 내가 그의 권위적인 심기를 건드렸겠지. 그런 이들은 "내가 곧 법이다"라는 식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지 무언가 제 기분에 거슬리기만 해도 상대를 처벌하려 든다. 그런 일부 교사의 만행이 현재의 교권 추락에 일조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어른이 되고 나니 오래된 시야에 갇혀 아이를 처벌하려 들 때가 있다.




딸아이가 유치원생일 적만 해도 아침에 아이의 옷을 입혀 주고 이를 닦아 주고 신발을 신겨 주곤 했다. 입으로는 한국인답게 "빨리, 빨리"를 달고 살았는데 아이가 1학년이 되고 난 어느 날, '빨리'라는 말이 불현듯 공허해졌다. 나는 "빨리 먹으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이는 아침밥을 씹다가 멍을 때리고 씹다가 멍을 때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빨리'라는 단어의 효력이 사라져 있었다.


이후로는 되도록이면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알람을 설정해 두었다. 알람이 울리면 스스로 기상하여 스스로 옷을 입고, 옷을 입고는 아침 식사를 시작하고, 알람이 울리면 식사를 중단한 뒤 양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나면 가방을 챙겨 신발을 신고 곧바로 문을 나서도록 루틴을 정하였다.


처음엔 순조롭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싫다고 떼를 쓰다가 식사가 늦어지기도 하고, 식사가 늦어지면 밥 먹을 시간이 모자랐다며 징징대기도 하고, 그러곤 이를 닦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상황에 나의 잔소리가 폭발하여 늦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하루는 완전히 늦어졌다. 학교 시작 종은 오전 8시 20분에 울리고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10분인데, 현관문을 나설 때의 시각이 벌써 8시 12분이었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자꾸 늦장을 부리고 나의 잔소리가 소용 없어졌으니 차라리 지각을 하고 학교에서 처분을 받으면 행동 교정의 효과가 있으리라 여겼다. 그렇지만 일부러 지각을 시킬 필요까진 없으니 아이와 함께 학교로 냅다 뛰었다. 그 덕분인지 시작 종이 울림과 동시에 교문을 통과(매일 아침 교문 앞에는 교장 선생님이 서 계신다.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해 주시다가 시작 종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교문을 걸어 잠그신다. 교문이 잠긴 후 도착한 아이들은 교문 옆의 오피스에서 tardy slip, 일명 지각 딱지를 받아야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tardy slip은 학생부에 반영된다)하여 교실 앞에 도착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입실한 뒤라 주변이 적막했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가기 무섭단다. 내 머릿속에선 이런 말들이 휘몰아친다.

그러게 서둘렀어야지!
네가 늦장 부려 놓고 울긴 왜 울어!
앞으로 엄마 말 들을 거야, 안 들을 거야!


간신히 머리를 하얗게 비우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만 되뇌었다.


"들어가야 돼. 그냥 들어가야 돼."


아이는 엄마도 같이 들어가자며 더욱 크게 울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께서 교실 밖으로 나오신다. 안 들어오고 뭐하고 있느냐고, 거기서 그렇게 울면 어떡하느냐고, 지금 시간이 몇 시냐고, 얼른 들어오기나 하라고 지시를 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선생님은 상체에 웨이브를 주며 춤을 추신다.


"너 별로 늦지도 않았어. 이건 늦은 것도 아니야. 뭐 좀 늦는다 해도 세상이 무너지니?"


선생님의 춤에 아이가 울다 말고 웃는다.


"그래, 웃어야 너답지. 오늘 너한테 특별한 미션 하나 줄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얼른 들어와. 미션 줄게."


아이가 잽싸게 교실로 들어간다. 들어가기 싫다고 아깐 그렇게 울더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지각에 관대하면 아이가 더 늦장을 부리진 않을까?

결과적으론 그렇지 않았다. 다른 아이가 모두 착석한 교실에 홀로 뒤늦게 들어간 것만으로도 아이에겐 충분히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선생님이 춤을 추며 달래준 것은 선생님의 친절이라고만 인식하였지 '앞으로도 늦장 부려도 되겠다'는 얄궂은 논리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이에겐 인위적인 '처분'이나 '벌'이 필요 없었다. 행동의 결과(교실에 혼자 늦게 들어간 것)를 스스로 겪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한 번 더 지각하여 tardy slip을 받았다. 그 날 아이는 신기 어려운 신발을 굳이 골라 혼자서 신기 위해 한참을 씨름하다가 늦었다. 나 역시 고집을 부리며 아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신발 신는 일을 아침마다 엄마가 도와줄 수는 없으니 스스로 신을 수 있는 신발을 고르라"고 하였는데 아이는 어려운 신발에 도전을 했고, 나는 아이가 스스로 도전에 성공하도록 지켜만 본 것이다. 아이는 신발 신기에는 성공하였으나 지각을 하고 말았다. 


도와 주지도 않는 엄마와 등교하면서 지각을 두 번밖에 하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초등학교 1학년으로서 훌륭하다. 누구의 잔소리도 없이 루틴을 지키며 등교 준비를 하게 되기까지 아이는 시야에 갇힌 엄마를 견뎌야만 했다. 행동 교정에 '벌'이 필요하다는 케케묵은 시야에 갇혀 이상한 생각을 지니고 이상한 잔소리를 하는, 이상한 엄마를. 





매거진의 이전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