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디락스 May 04. 2021

엄마 아빠의 싸움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상처가 되었다

예민함에 대하여


내가 8살 즈음이었다. 엄마 아빠가 크게 싸웠다. 큰소리가 오고 갔고 아빠가 팔을 휘두르다가 유리병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졌다. 투명한 한라산 소주병이었다. 나는 거실이랑 내 방 사이에서 울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깨진 유리를 보면 심장이 쿵쾅 거린다.

스스로가 유독 예민한 편이라는 것을 서른 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시계에서 똑딱똑딱 소리가 난다. 달달달 다리를 떠는 사람이 있으면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면 바로 알아차린다. 자주 가는 카페에 원두가 바뀌었다는 것을 안다. 사람의 표정과 말투에 특히 예민했다.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긴장한 듯 허허허 웃으면서 좋아서 코가 빨개지며 웃던 모습을 기억한다.

서른 살이 되도록 스스로가 예민한지 몰랐던 이유는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시계 소리가 거슬리지만 남들도 다 참고 사는 줄 알았다. 독서모임에서 저 두 사람이 몰래 사귀는걸 다 아는데 남들도 모르는 척해주는 줄 알았다. 남들도 다 새 옷을 사면 까끌거리는 텍을 자르고 입는 줄 알았다.

엄마 아빠의 싸움이 나에게는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상처가 되어 남았지만, 언니는 "응 맞아, 그때 기억나." 정도로 기억하고 동생은 "그랬었나?"라고 기억한다. 이 녀석 마당 잔디밭에서 갈색 바지 입고 울고 있었는데..


내가 스스로 가정을 꾸리고 과거의 우리 가정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객관적으로도 '상식적인 집'이었다. 아빠는 매일 소처럼 성실히 일했다. 한 번도 끼니 걱정과 이사 걱정을 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삼 남매의 4년제 대학 학비를 한 번도 연체하지 않고 납부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따뜻한 밥을 차려놨다. 커다란 금색 주전자에는 매일 새로 끓인 구수한 보리차가 있었고 집은 깨끗했다. 내가 상장을 받아오면 기뻐했고 책꽂이 가장 아랫칸에 '상장 보관함'을 만들어서 꺼내보며 좋아하셨다. 한여름밤에는 잔디밭이 있는 마당에서 수박을 썰어먹었다. 나는 뒹굴뒹굴 영어공부를 했는데 풀벌레 소리가 참 좋았다.

첫아이가 태어났다. 바스락 소리에도 잠에서 깨고, 눈도 뜰락 말락 쪼그만 녀석이 엄마품과 아빠품을 기가 막히게 구분했다. 이제 작은 자극에도 하루에 천국과 지옥을 열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여린 아가씨가 아니라, 수사자처럼 강한 엄마가 되어야 했다.


통역 부스에 들어가면 동그란 빨간 버튼이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내 목소리가 사람이 귀에 꽂은 통역기로 송출된다. 머릿속 빨간 버튼을 눌렀다 땠다 연습을 한다. 똑딱똑딱 시계 소리가 들리면 빨간 버튼스위치를 끈다. 그리고 아이가 웃을 때면 빨간 버튼스위치를 누른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

쿵쿵 윗집의 층간소음에는 빨간 버튼을 끄고, 봄바람에 나뭇잎이 사라락 춤을 추는 소리에 빨간 버튼을 누른다. 나의 예민함 음 더 이상 악마의 저주가 아닌 신의 축복이다. ​

​빨간 버튼을 누르고 글을 쓴다.
7시다. 이제 빨간 버튼을 끄고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