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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Mar 22. 2022

화풀이 음식

엄마의 음식은 자극적이었다. 맵고 짜고 달았다. 갈치조림은 고춧가루에 청양 고추까지 넣어서 겉껍질을 살살 긁어내고 먹어도 매웠다. 비주얼은 그럴싸한 뚝배기 계란찜은 후추를 얼마나 넣었는지 한 숟가락 떠먹으면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음식은 닭도리탕이다. 엄마는 닭도리탕에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생닭을 사 와서 도마 위에 놓고 커다란 칼로 부엌이 울리도록 탁탁 잘랐다. 당근과 고구마를 큼지막하게 잘랐다. 엄마는 특이하게 감자 대신 고구마를 넣었다. 배려라면 배려였을까. 난도질당한 닭 조각에 야채를 올리고 고춧가루 듬뿍, 집간장 듬뿍, 설탕도 듬뿍넣었다. 닭도리탕을 끓이는 날이면 눈이 매웠다.


아빠는 술을 좋아했다. 어린 기억 속에 아빠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아주 어릴 때는 좋았다. 술을 마신 날에는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사 왔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을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게 되자 술 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들어와 달그락달그락 불을 키는 아빠가 싫었다. 엄마와 다툼이 잦았고 그럴 때면 엄마는 또 음식에 화풀이를 했다. 엄마 아빠가 싸우고 난 다음날 아침 된장국은 유독 짰다.


결혼을 하고 나면 친정엄마의 음식이 그리워진다는데 전혀 그립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 친정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할 때면 갈비집에 가자고 조르는 편이었다.


다행히도 내 남편은 술을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큰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내가 아빠와 정반대의 사람을 찾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거의 모든 회식자리를 '아이들 목욕시켜아 한다'라는 핑계로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남편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출장은 피할 수 없다. 남편이 출장을 갔다. 아이 둘을 세 끼를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놀이터를 데리고 가고 두 번 간식을 챙겨주고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한다. 그리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싸움을 말린다. 그렇게 파김치가 되어 저녁이 되면 나도 모르게 신전 떡볶이를 시킨다. '유기농 자연 음식'을 좋아한다던 내가 정말로 힘들 때는 결국 엄마의 닭도리탕을 떠올린다.


엄마가 깍두기를 보내왔다. 엄마의 음식도 많이 순해졌다. 아빠도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이 술을 줄여서 인것 같다. 쿨피스 한 잔으로 신전 떡볶이를 마무리하고 엄마에게 오랜만에 전화 한번 해야겠다. 전화하면 또 싸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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