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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Mar 22. 2022

큰 소리나지 않는 집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민지네 집에 놀러 갔다. 적잖이 놀랐다. ‘집안 평화’ 빈부격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친구를 데리고 왔냐며 엄마는 활짝 웃었다. 나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칭찬 해주셨다. 엄마와 딸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엄마가 내 칭찬을 늘어놓자 민지는 그만하라며 엄마 품에 안겼다. 그 모습도 생경했다. 3살 이후에는 엄마가 아이를 안아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줄 알고 컸다. 잠시 뒤 친구의 아빠가 들어오셨다. 친구와 친구 엄마는 현관으로 나가 아빠를 맞았다. 친구 엄마가 아빠와 살짝 껴안았다. 주스를 먹다가 캑캑 기침이 나왔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다른 차원의 세상에 다녀온 것 같았다. 나를 반겨주고 안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날은 엄마·아빠가 싸우지 않았다. 그때부터 민지가 더 귀하게 보였다. 구김살 없는 민지가 부러웠다.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민지는 아무런 노력 없이 가지고 있었다. 나의 꿈은 집에서 큰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내 성격에는 결함이 있었다. 자동차로 치면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았다. 엔진에는 이상이 없으니 굴러가긴 했지만, 폭우가 내리는 위급상황에선 성격이 문제가 되었다. 친구 관계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는 그럭저럭 해나갔다. 연인 관계가 문제였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와이퍼 없이 도로를 달리는 것 같았다. 위험하고 위태로웠다.


몇 번의 연애가 처참하게 끝나고 인정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자동차는 리콜이 되지만 나는 리콜되지 않았다. 고쳐 써야 했다.


첫 번째 결함은 사랑을 받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랑과 평안이라는 감정에 이질감을 느꼈다. 민지네 집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감사하게 받지 못했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자동차 문을 열어주었다. 불편해서 그대로 집에 와버렸다. 사랑받는 법을 배워 나갔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두 번째 결함이 더 까다로웠다. ‘다툼보다는 이별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다투고 싸우는 것이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의견 조율 과정이라는 점을 몰랐다. 나의 마음은 잘못 설정되어 있었다. 다툼과 싸움이 생명을 위협하는 아주 나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갈등 상황을 말로 풀어내고 조율하기보다는 관계를 끝내버렸다. 나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견을 말하는 법을 연습해야 했다.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반찬통을 내던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색함, 화남, 민망함, 부당함. 이런 감정을 잘 정리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나갔다. 어린아이가 미음을 먹다가 초기 이유식을 먹다가 중기 이유식을 먹다가 밥을 먹는 것처럼 하나하나 해나갔다.


결과는 나쁘지 않다. 이젠 그런대로 잘 굴러 간다. 새 자동차는 아니지만 결함들을 찾아 잘 고쳐놓은 중고 자동차다. 이제는 그럭저럭 사람 구실을 하며 살아간다. 이제는 안다. 사랑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랑이 되어야 한다. 불편한 감정은 외면하거나 부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정확히 정해주고 바라봐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마음 깊은 곳 불편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내쳐내며 평화를 지킨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의 20대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가 된다. 20대에 지독한 우울증을 겪은 것에 감사하다.


까딱하면 정신 분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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