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디락스 Oct 14. 2022

정신과 진료 6개월만에 알게 된 사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정신병원에 다닌지 몇주쯤 지났을까. 의사선생님은 내게 부모님에 관해 물었다.


“뭐...훌륭하신 분이예요. 책임감도 강하시고...”

나의 부모님을 형용할 단어를 찾기 위해 눈알을 이리 저리 굴려봤지만 나는 끝내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 뒤에 다른 형용사를 찾지 못했다.


“부모님이 훌륭하다고 느꼈던 상황을 하나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좁은 길에서 으르렁 거리는 커다란 개를 마주친 것처럼 얼어붙어버렸다. 누군가와 마주보고 대화를 할 때, 할 말이 끊기고 조용한 정적이 오면 나는 괜히 불안해 진다. 그래서 마구 헛소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헛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겨우 작게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물어봐서 지금은 잘 생각이 안나는데...”


다음주도, 그 다음주 진료에서도 의사선생님은 또 물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세요?”


“평범한 엄마예요. 생활력도 강하시고.그런데 선생님 저 먹는 약이 부작용이 없으면 계속 먹어도 괜찮은건가요?”


자꾸 말을 돌려버렸다. 정신과 상담을 수개월 하는 동안 나는 부모님에 관해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에 관한 나의 감정과 생각은 먼지가 가득 쌓인 다락방과 같았다. 온갖 쓰레기와 먼지가 뒤덮여 있어서 문을 열기 조차 겁이나는, 청소를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는 그런 방 말이다.


무려 반년이 지나서야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부모님께 섭섭한 기억이 있어요.”


먼지가 가득쌓인 다락방문을 빼꼼 열어봤다. 놀랍게도 나는 부모님을 엄청나게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이 두렵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정신과 진료를 하면서 내마음에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는 알았지만, 그 먼지쌓인 다락을 청소해볼 용기와 힘이 도무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다락방은 먼지쌓인채로 닫혀있었다.


결혼을 하고 내가 나를 똑 닮은 아이를 낳고 나서야 체력과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체력과 용기보다 절박함이 생겼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 손끝을 통해 나온 이야기는 놀랍도록 잔인했다. 엄마와 아빠를 끔찍하게도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다. 글을 쓰고 나서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었다.


부모님의 불화와 아빠의 술문제, 그리고 막내 아들과 나를 차별하면서 어린나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지만, 나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고 지냈다.부모님께 효도는 못할망정, 적어도 미워하면 안된다고 믿었다. 길을 지나가다가 넘어져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다가가 아이를 달래주는 것이 인간된 도리이듯이. 자식은 부모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야 내가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는 부모님을 사랑해. 부모님은 책임감이 강하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어"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자꾸 나 자신에게 이런 주문을 되뇌이면 되뇌일수록 부모님을 향한 나의 마음에서는 이상한 악취가 났다. 땀을 흠뻑 흘린고 나서 씻지도 않고 향수를 뿌리면 나는 그 냄새랄까. 산특하지 않은 냄새가 났다. 땀냄새보다 더 역한 냄새가 났다.


나의 마음속 감정들은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버릴 것 같아서 불안했다고, 부모님 두분이 싸울때면 무서웠다고, 조금 커서는 부모를 증오했다고, 아들과 딸을 편애하는 그 모습이 꼴보기 싫고 짜증났다고. 인정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에 관한 나의 감정이 글을 통해 모두 나오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온몸에 땀을 씻어냈을 때 비로소 나는 사랑이라는 향기를 뒤집어 쓸수 있었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감정을 인정해 주고 나니, 나는 사실 놀랍도록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내가 인간관계를 맺는 패턴이 이러했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점점 멀어져갔다. 의견대립이 잇는 누군가와 싸우고 대립하기보다는 아예 이사람과 관계를 단절하는 편을 선택했다.


잘 만나던 남자친구와도 조금만 틀어지면 싸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헤어져버렸다. 싸우는게 두려웠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상대방에게 정확히 헤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우리 엄마는 평범한 엄마예요. 생활력도 강하시고.그런데 선생님 저 먹는 약이 부작용이 없으면 계속 먹어도 괜찮은건가요?”이렇게 말을 돌리듯 헤어져 버렸다. 나는 싸우지 않는 순한 아이가 아니고, 갈등상황을 제대로 마주하기 겁나 피하고 도망가고 숨어버리는 겁쟁이일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헤어지고 싶어도 쉽게 헤어질수 없는 남편이 생기고, 게다가 평생 절대 심리적으로 헤어질 수 없는 나의 아이가 둘이나 생겼다. 이제 나는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숨어버리지도 못하고 나의 어린시절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사랑해야 싸운다.

싸워야 사랑하는 사이다.

싸운다는건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몸부림이다.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하고, 화도 내보면서 나와 너를 이해해보려는 처절한 악다구니다. 싸울만큼 싸우고 나면, 그 끝엔 언제나 사랑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싸우다가 서로를 포기해 버리지 않는이상,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그 끝에는 사랑이 있다.


어제도 글을 쓰고 오늘도 글을 쓰고 내일도 글을 쓸 것이다. 가족에 관한 글을 쓴다.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글을 쓴다. 싸우듯이 글을 쓴다. 나를 이해해 보려고, 너를 이해해보려고 오늘도 이렇게 악다구니를 쓴다.


사랑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큰 소리나지 않는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