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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May 07. 2021

나는 애완견처럼 길러졌다.

둘째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어린 시절 아빠 차는 구형 겔로퍼였다. 아침마다 언니와 나 남동생을 태우고 초등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물건을 보관하는 곳에 껌과 500원짜리 동전이 있었는데, 아빠는 남동생에게만 몰래 500원짜리 동전을 쥐어줬다. 학교가 끝나고 입에 사탕을 오물거리는 동생을 만나면 아빠가 또 500원 줬구나 생각했다. 아빠에게 아들은 조금 더 각별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언니가 '윤선생 영어교실'을 시작했다. 매일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영어를 공부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언니가 공부하고 난 교재를 지우개로 지워서 내가 다시 보곤 했다. 나도 새 교재를 사달라고 조르면 사주었을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말을 못 했다. 언니는 공부를 잘했다. 엄마에게 첫딸은 조금 더 각별했다.

나는 우리 집에 애완견처럼 길러졌다. 분명 사랑받고 컸지만,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애완견을 아무리 사랑해도 애완견이 나중에 커서 나를 책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언니가 쓰던 교재로 공부하고, 언니가 입던 옷을 입었다. 다 큰 지금, 엄마 아빠는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남동생을 찾지 애완견을 찾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앨범을 보았다. 조촐하게 차린 돌상에 에 앙앙 우는 언니의 사진을 보았다. 돼지머리에 돈이 가득 올려진 남동생의 돌상 사진을 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내 돌상 사진이 없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걸..."하고 말을 얼버무리던 엄마는 내가 결혼하기 직전 '그때 그냥 사진관에서 사진만 찍고 지나간 것 같다."라고 인정했다.

"엄마, 나 지금 돌상 차려줘. 돌반지는 내 아이 돌잔치 때 두 개 해줘."


첫아이와 세 살 터울의 둘째를 낳았다. 둘째를 낳고 알았다. 애완견을 기르듯이 사랑만 잔뜩 주고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완벽한 육아이다. 나는 완벽한 육아를 받고 자랐다. 대학생이 되어 인도를 여행했고, 중국을 횡단하고, 한 달 동안 혼자 동남아를 배낭을 메고 다녔다. 내 인생에 중요한 의사결정은 모두 내가 선택하고 부모님께 통보했다.

500원과 쩍 소리 나는 새 영어 교재 대신에 내 인생을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받았다. 나의 두 아이에게도 커다란 날개를 선물해 주고 싶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진짜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훨훨 날기를 바란다.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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