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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직이니 하루가 달라졌다

by 햇님이반짝

개학 후 첫 휴무일이다. 가족들은 아무도 모른다. 나 혼자 설레고 있다는 걸. 하루를 온전히 알차게 쓰리라 마음먹었다.




아홉 시에 눈을 뜨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등교했다. 새벽기상은 이미 물 건너갔다. 누가 여섯 시 알람을 꺼놨나. 누구긴 나겠지. 머리로는 일어나야지라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아이들 아침에 먹을 삶은 달걀과 과일을 준비해 두었나 보다.



두 딸에게는 자주 먹지 마라고 하는 라면을 지금 먹어야 한다. 시금치와 방울토마토 달걀볶음은 내일 먹어야겠다. 라면이 고프다. 아이들 없을 때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 빨래를 돌리고 내 무릎을 넘는 화분 두 개를 화장실로 옮겼다. 몬스테라와 아키라에게 물을 주는 날이다. 허리가 휘청일 정도로 무거워 물 주는 날은 마음을 먹게 된다.

커피와 빵을 준비하고 열한 시에 앉았다. 시간은 충분한데 마음이 조급하다. 뭐라도 써내야 한다. 그런 마음도 모른 체 시간은 잘도 흐른다. 책을 읽다가 휴대폰에 알람이 울린다. 자동으로 손이 갔다. SNS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몇 개만 보고 내려놔야지 했는데 폰은 내 손에 달라붙어있다. 겨우 뿌리치고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타닥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대신 볼펜을 잡았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다. 여섯 시간 동안 뭐 했나 싶다. 이대로 앉아있다간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움직이자. 공원으로 갔다. 진달래가 핀 걸보고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다.

10km 마라톤 다녀온 지 11일 만에 러닝앱을 열었다. 마라톤에서 개인 기록을 깨어 흡족했다. 오늘은 천천히 뛰기로 했다. 구름도 그 자리에 있고 나무도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주는 것 같다. 오른발 왼발 뒤꿈치부터 발바닥을 지나 발가락이 땅에 닿이는 걸 알아챈다. 오르막을 뛰어도 숨이 거칠지 않았다. 평지에서 뛸 때와 호흡이 별반 차이가 없다. 속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 뛰기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오늘 무조건 기록을 깨야지라고 했다면 나오기 전부터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천천히 달리니 몸이 가벼웠다. 내 속도가 느껴졌다. 어느새 4km 안내가 나온다. 5km까지만 뛰어야지. 마지막 1km 남겨두고는 속력을 내었다.




쉬는 날은 시간이 두배로 빠르다. 글을 내어놓지 못해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늦잠은 나를 위한 휴식, 라면은 작은 일탈, 빨래는 가족을 위한, 록이를 품은 화분은 글을 쓰며 눈의 피로를 풀기 위함이다. 흠뻑 젖은 초록이들을 보니 마음까지 상쾌했다. 앉아만 있는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머리가 무거우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는 가끔 달리기로 몸을 고생시킨다. 오늘도 달리며 생각나는 문장을 적다 보니 여기까지 쓰게 되었다. 행동 하나가 하루의 흐름을 바꾼다. 몸을 움직이면 기분도 하루의 마무리도 달라질 수 있다. 오늘 했던 모든 일중 의미 없는 행동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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