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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집 사이

by 햇님이반짝


퇴근 후 오랜만에 바로 공원으로 향했다. 집까지 퇴근시간은 단 4분. 오늘 나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하루를 정리할 시간.



퇴근은 하루의 끝이자 집으로 향하는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끝나면 집에서는 또 다른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리 집엔 중등 아이들이 머문다.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밀착 육아는 끝이 났다. 대신 마음으로 경제적으로 돌보는 일이 남았다. 일만 하는 엄마로 남지 않게. 아이만 바라보다 내가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틈틈이 나를 돌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곳으로 온다. 내 손이 닿지 않아도 꽃이 피고 어둠이 내린다. 바람이 봄꽃들에게 아는 체를 했더니 제 역할 다한 벚꽃 잎이 후회 없이 떨어진다. 보기만 해도 벅차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답다. 벚꽃 잎을 밟고 지난다. 매년 봄이 오듯 누군가에게 기다려지고 기억될 존재로 남고 싶다.



자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변화가 일어난다. 따뜻하지만 냉정하다. 걷다 보면 위안을 얻기도 정신이 차려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피로가 싹 사라지지만은 않더라. 생각정리가 되면 몸의 긴장도 함께 풀린다.

길가에 반짝이는 불빛들이 오늘도 수고했다고 나의 앞길을 밝혀준다. 이대로만 가라고. 전등은 꺼질지 몰라도 계속 걸어가는 내 발길은 멈추지 말아야지.



걷는다는 건 나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다. 한 걸음 한걸음 내딛을수록 오늘의 묵은 감정도 하나씩 두고 온다. 아무리 뻗어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엉킴은 것이 아니라고 외면해 본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한다.




직장과 집사이 쉼표를 찍는다.
아내도 엄마도 직원도 아닌 오로지 나로 남는 시간. 나는 이곳에서 소소한 자유를 누린다. 작은 자유로 큰 위로를 받고 싶을 때 공원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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