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의 일기장

by 햇님이반짝


처음 영감이 찾아올 때 쓰는 나는 무척이나 감성적이다. 현재의 생각 그 느낌 그대로 노트북이 휴대폰키패드를 마구 두드리게 된다. 보통은 길을 걷거나 일을 할 때 씻을 때 폰을 바로 볼 수 없을 때 유독 그분이 오신다. 재빠르게 잡지 못하면 성질 급한 그분은 금세 자리를 비우고 만다. 그렇게 두서없이 쏟아내는 생각조각들을 내뱉고 난 뒤 혹여나 글을 이을수가 없게 되면 저장이라는 최선의 선택 마음의 안정버튼을 누른다.


거기까지. 그 뒤로 다시 쓴 글을 마주할 때 드는 생각은 처음 만난 감성적인 내가 아닌 제삼자의 다른 이가 되어 의문을 제기한다. 퇴고에서 만나게 되는 나는 처음 쓸 때의 감성적인 나와 만나 의견이 충돌한다. 서로의 합의점 찾지 못하게 되면 더 이상 빠른 빛을 볼 수없게 된다. 이성을 되찾은 만큼이나 냉정해진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돼.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이 글을 마무리할 수없을 거라는 부정까지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퇴고를 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도 해본다. 거르지 않고 발설하는 처음의 내가 더 솔직한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모습이 진정 내 모습일지도. 퇴고하기 전의 내가 좋다. 날 것의 일기장. 하지만 일기장 기록만 할 것이라면 이런 공개적인 곳에서의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물론 절대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글은 쓰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여기 이런 사람도 있다며 마음속 이야기에 작은 꿈틀거림이 남아있다. 머릿속에서만 돌고 도는 단어들 겨우 꺼내어 나열해 놓고는 거르고 또 거르기 분주하다. 날 것의 나로 글이 발행될 수 있을까. 물론 퇴고는 반드시 거치고 거쳐야만 한다. 그래야 살아남은 글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초고를 쓸 때 누가 보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개의치 않은 채 편한 운동복을 입고 열심히 달리고 달려 땀에 흠뻑 젖은 내가 좋듯 시원하게 쏟아내는 글이 좋다. 퇴고는 그야말로 누가 봐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가는 출근길 같다.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날씨의 온도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출근복 같다.(사실 난 거의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지만)

그만큼 최대한 잘 다듬어진 글로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초보작가인 나는 초고와 퇴고의 크게 달라질 모습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변화 없는 한 긋 차이의 문장을 몇 날 며칠 부여잡는다. 혹여나 다시 보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까. 초고가 있어 시원하고 퇴고가 있어 안심이 된다. 이 말 저 말 다 거른 진짜배기 영양 가득 진국인 국물만을 우려낸 글을 쓰고 싶은데 현실은 살코기 다 발라놓고 남은 뼈다귀 같은 글이면 어떡할까 내심 걱정이 된다. 그렇다 할지라도 두서없는 글에 발행이 모든 것의 시작임을 알기에 오늘도 일기장 끄적임은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남겨놓은 일기장에 날개가 달려 작게나마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들과 마음이 닿길 바래본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