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입니다만
또 발동이 걸렸다. 이번엔 가자미 눈으로 내 자리를 째려보았다. 지겹다 싶을 즈음이면 자리배치를 다시 한다. 사실 옮겨봤자 거실 안이지만 그럼에도 움직이고 싶다. 바라보는 장면만 바뀐다. 그렇다고 창문을 향해 책상을 놓지는 않는다. 예전에 아이들 방에 책상을 둘 때, 방문을 등지는 구조는 좋지 않다는 걸 들었다. 등 뒤가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실에 있는 6인용 식탁에서 책 읽고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밥 먹을 때마다 노트북과 독서대를 옆으로 치워야 해서 번거로웠다. 몇 달 전 내가 쓰려고 독서실 책상을 중고로 들였다. 옆에 막아주는 벽도 있고 좋았는데 거실식탁에서 넓게 쓰던 버릇을 들였더니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큰아이가 그 책상에 눈독 들였다. 나는 인심 쓰듯 아이방으로 들여주었다. 큰아이는 원래 쓰던 검은 책상과 독서실 책상을 함께 썼다. 나는 다시 거실 식탁에서 글을 썼다. 내 자리인 듯 아닌 듯 쓰면서도 오롯이 나만의 책상을 갖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큰아이 방을 청소하는데 답답함을 느꼈다. 안 그래도 작은 공간에 침대, 옷장, 책장 두 개 책상 두 개까지 있으니 숨이 막혔다. 방도 지저분해서 더 좁게 느껴졌고 검은 책상 위엔 문제집과 옷가지, 필기도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이와 상의해서 버릴 건 버리고, 검은 책상은 내가 쓰기로 했다.
검은 책상과 3단 책장 하나를 뺐다. 정리도 되고 드디어 오로지 나만의 책상이 생겼다. 이제 더 이상 밥 먹을 때마다 옆으로 옮기지 않아도 된다. 책과 노트북을 그 자리에 두고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하나 배부르면 또 하나를 바란다더니.
내 책상으로 쓰기에는 딱인데 거실에 놓으려니 배치가 중요했다. 답답하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놓을 방법이 없을까. 검은 책상을 큰방 벽 쪽에 붙이고 왼쪽 창문 옆엔 원래 나의 3단 책장을, 오른쪽에는 원래 쓰던 거실식탁을 놓았다. ㄷ구조가 되었다. 아늑하고 완벽했다. 더할 나위 없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사용해 보았더니 불편한 점이 생겼다. 노트북 화면이 남편과 아이들이 오가면서 다 보인다는 점이다. 아무도 자세히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신경 쓰였다. 그리고 등 뒤가 거실과 아이들 방이라 누가 부르면 자꾸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아봐야 했다. 언제는 내가 모르는 사이 둘째가 뒤에 서 있기도 했다. 한 달여 사용해 본 결과 이건 아닌다 싶었다.
주로 아무도 없는 목요일에 자리를 옮기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른 저녁을 먹던 중 자리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또 바꾸고 싶어졌다. 남편은 "지금 위치 좋은데 왜 또 바꾸냐"며 못마땅해했다. 나도 내방 만들어달라며 억지를 부렸다. 방도 따로 없는데 이렇게라도 나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리배치는 나만의 소소한 취미이자 낙이다. 결국 남편도 식탁 옮기는 걸 도와주었다.
창문 앞 3단 책장은 그대로 두고 검은 책상을 오른쪽으로 돌려 부엌을 바라보게 했다. 거실 식탁은 검은 책상 오른쪽 끝에 닿도록 세로로 배치했다. 좀 어정쩡하지만 나는 만족도. 남편이 내 바로 앞에 앉지만 않으면 모든 게 완벽하다.
새롭다. 가끔 이렇게 작은 변화를 준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서라도 글을 쓰게 하고 싶은 거다. 밖에서 나의 기분을 바꿔주는 일은 드물다. 내 분위기는 내가 만든다.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고 있는데 큰 아이가 내 앞에 가정통신문을 내민다. 방학한 지 일주일 만이다. "박 대리 이제야 제출하나?" 갑자기 뜬금없는 설정에 딸도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사무실이 생겼다. 어차피 우리 집 거실이지만 느낌하나는 나만의 공간이다. 이제 누가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눈알만 굴린다. 가만히 앉아도 집 안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한 달은 행복하겠다. 그 뒤로는 장담할 수 없다.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까. 나를 존중하는 방식 중 하나다. 나를 위한 공간 배치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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