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무도 없다. 깜깜한 거실에 불을 켰다. 십 분 뒤 '띡띡띡띡' 누가 들어온다.
웍!
방으로 가던 아이는 화들짝 놀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책가방도 내려놓지 못했다. 한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둘째의 눈주위는 빨게 졌고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안 그래도 집에 올 때 무서워서 아빠랑 통화하고 있었는데 놀랬잖아"
멈추지 않는 눈물을 보고 있으니 멋쩍고 미안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내 눈도 뜨거워졌다. "미안해" 끌어안고 울 뻔했다.
반가운 마음이 도를 넘쳤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나는 순간만큼은 격하게 반기고 싶었다.
조금 있으면 큰아이가 온다. 둘째를 달래고 언제 그랬냐는 듯 2차 전을 준비한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 방에 있다가 그대로 문 옆에 얼어붙었다.
어머니, 왔어? 어딨어요?
현관문 옆 큰방부터 나를 찾고 있는 그녀가 다가온다. 동생에게 "어머니 어딨어?"라고 묻는다. 둘째는 나와 같이 있다. 그때 거실을 지나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숨 죽였다. 긴장된다. 이때다.
"웍!"
"아잇, 깜짝아!"
손을 바르르 떨면서 눈이 커졌다. 큰 딸이 놀라는 모습에 여태 내가 당한 수모(?)가 씻겨져 나가는 듯했다. 둘째와 다르게 통쾌했다. 첫째가 놀라는 모습은 처음이다. 그 와중에 큰 아이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행이다. 만약 큰 아이가 울었다면 나와 보이지 않는 벽이 더 높게 쌓일 뻔했다. 언니가 놀란 모습에 둘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눈은 빨갰지만 같이 웃고 있었다.
큰 딸은 평소 내가 퇴근하고 들어오면 목소리만 겨우 들릴 뿐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랬던 아이가 집으로 오자마자 이 방 저 방 나를 찾는다.
우리 집엔 강아지 대신 까칠한 중학생 두 명 있다. 강아지를 키웠다면 나 대신 아이 대신 집으로 귀가하는 사람을 반기지 않았을까. 두 아이가 나를 반겨주지 않아도 내가 더 반응해야지. 매번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먼저 집에 있는 날은 이름을 불러준다.(격하게 반길 거라니 놀란 둘째는 그냥 엄마 책상에 앉아있으란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낀다. 아이는 풀리지 않는 문제와 씨름하며 머리를 싸맨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적막은 어느 날은 안도감이 들다가도 어느 날은 기분이 가라앉기도 한다.
집에 오자마자 누군가를 찾는 이유는
'나 오늘 진짜 바빴어.'
'엄마 나 종일 학교 갔다가 학원 가고 힘들었어'
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랬어? 힘들었지 고생했어'라는 말을 원했던 건 아닐까. 나 여기 있다고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본체만체한다면 다시 나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나를 반기는 이가 있다면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더 빨라질 것 같다.
남편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방법으로 맞이해야겠다.
다음 날 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둘째가 하교했다. 숨을 틈이 없었다. 왔나 하고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데 방문 밖에 서서 이미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두운 거실 긴 머리를 풀고 있어 내가 더 놀랬다. 둘째가 단호하게 말한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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