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만 하면 되는 줄

내 이야기를 하기까지

by 햇님이반짝

나는 느린 사람이다.

책 한 페이지 읽는데 곱씹어서 읽어야 하고 후루룩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 또다시 돌아가기 일쑤다.

필사하는 게 좋아 단어 한 문장 꼭꼭 눌러 모한다. 마음만큼은 그 문장을 얼른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데 급할수록 억 속의 문장들은 배터리 없는 불빛처럼 깜박거리다 이내 사라져 버렸다. 급한 마음에 알아보지도 못할 글로 휘갈길 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문구가 되었다. 빨리 그리고 많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야 시간을 아끼는 것만 같았다. 그러기엔 내 기억력이 신통찮은 게 아쉽다.




집중되는 음악을 들으면 몰입이 잘 되려나. 빨간 네모 안에 하얀 세모를 클릭하여 집중 높이는 음악을 검색한다. 지브라 ost를 들으니 책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이내 음악에 더 심취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책은커녕 마음만 더 촉촉해 다시 독서에 집중하기까지간이 걸린다.



내가 봐도 열심히 적었다. 남은건... 흰바탕에 검은 글씨?


독서를 하며 이 문장은 꼭 기억하리라 적어둔 A4용지(이면지)가 수십 장은 된다. 두 개의 파일에 빼곡히 보관되어 있다. 다시 꺼내 보지도 않을 거면서.(이 글 적으면서 오랜만에 펴보았다) 정리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꺼내보니 또 뿌듯하기도 하네.


주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필사했다. 필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사실 일일이 사지 못하는 책에게 마음껏 줄끄고 색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시 빌려보지 않으리라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라며 촘촘히 중요한 내용을 기록했다. 그리고 블로그에도 번갈아가며 남겼다. 차라리 블로그를 더 열심히 할걸.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내 이야기 하나 더 남더라면 어땠을까. 책 베껴쓰기도 많이 했지만 저장강박증처럼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좋은 글 지혜로운 명언들 하나라도 더 폰 속에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지나고 보니 책은 많이 본 거 같은데 의미 없이 읽은 모양이다. 들어오는 거에 비해 나오는 건 미세했다. 인풋과 아웃풋이 이렇게나 중요한걸 브런치를 시작하며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책 읽는 시간마저도 아깝게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 줄이라도 더 적는 게 남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무작정 들이대고 적으려니 한없이 초라한 글이 되지만 파일 두 권 모일정도로 필사만 했을 때보다 내 이야기 하나 완성되는 지금이 더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걸 실감한다. 전히 필사는 마음의 안정을 주지만 예전만큼 필사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쓰려면 좋은 글을 읽어야 되는데 언제부터 내 이야기하기도 벅차다.


이러다 또 글감이 바닥나고 현실에 부딪혀 책으로 돌아오고 다시 글을 쓰는 이 자체만으로도 좋다. 이렇게 돌려 막기(?) 해도 괜찮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단 꼭 돌고 돌아야 한다. 막히지 않게. 글쓰기 창을 클릭하는 것이 뚫어뻥만큼의 막강한 힘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느리지만 다행이다.







사진 출처: 햇님이반짝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