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난 후였다. 고1 되는 첫째가 중2 되는 동생에게 책상을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대신 한 달 뒤에 내가 다시 바꾸자고 하면 바꾸는 거다"라는 조건과 함께. 동생은 좋다고 했다. 큰아이는 독서실 책상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 책상은 직사각형으로 두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넓다.
불안했다. 독서실 책상을 둘째가 쓴다면 방문을 열어도 옆이 가로막혀 당장 무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책상에서 절대 폰 보지 마. 보는 즉시 압수다." 안될 거 알지만 으름장부터 놓았다. 괜히 한번 더 강조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설렌다며 물건을 옮기던 아이가 침대에 걸터앉아 풀이 죽어 있다. 내가 잔소리해서 그렇단다. 그 모습을 보니 잠자고 있던 불덩이가 1초 만에 솟구쳤다.
잔소리보다 폰보지 마라고 해서 그랬겠지. 내가 일하는 동안 하루 종일 폰을 보는지 뭐 하는지도 모르는데 저녁에 나 있는 시간만이라도 보지 말라고 하는 건데 그것도 싫냐며.
언니는 태블릿도 하고 다 보는데 왜 나만 안되느냐며 쏘아붙인다.
"언니는 그래도 본인 할 거는 하잖아. 너는 맨날 오늘 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놀았다며. 너도 뭐 했는지 보여달라고. 보여주면 되잖아!"
성적을 보여달라는 게 아니었다. 평소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길 바랐다.
마지막에 해서는 안될 말로 쇄기를 박았다.
"책상에서 공부 안 해도 되니까 폰도 보지 마! 공부도 하지 말고 폰도 보지 마!"
앞도 뒤도 안 보인다. 격앙된 열기를 가라앉혀야 했다. 커피 사는 핑계로 현관문을 나왔다. 계단 한 칸 내려오기도 전에 뜨거운 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커피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았다. 또다시 흐르는 눈물에 얼른 마스크를 눈 밑까지 바짝 올렸다. 차가운 기온에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얼어버리길 바랐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데 오늘따라 다 내 얘기 같다. 감정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자꾸 눈치 없이 흐르는지. 줌 화면을 요리조리 피하며 휴지로 수습했다. 그 와중에 둘째가 다가와하는 말.
"미안해. 그만 울어."
아.. 못났다. 수업 끝나고 내가 먼저 사과하려고 했는데. 그 기회마저도 놓쳤다.
사과도 먼저 받고, 딸을 기다리지 못했고.
기분대로 내뱉는 엄마. 순간을 못 참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매일 퇴근하면 안아주는 둘째. 내 기분을 먼저 파악하는 둘째, 조잘조잘 사람 사는 집으로 만들어주는 둘째, 내 생각해서 잠자리도 바꿔주는 둘째다.
공부 안 하고 놀던 나의 학창 시절을 닮았다. 나보다는 더 잘 되길 바랐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할 것 같은 이 작은 기대감이 결국엔 딸을 못 믿고 버럭 소리만 지르는 결과로 나왔다.
둘째가 큰 방에 간 사이 잠시 들렀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 오랜만에 본다. 새로운 마음일까. 며칠 안 가겠지만 정리한 걸 보니 또 기특하다. 왼쪽 책상 벽에 붙인 포스트잇에 한번 더 가슴이 뜨거워졌다.
놀기만 하지 말고 공부 좀 해
아직 기회가 많아
포기하지 마
지금부터라도 해보면 되는 거야
너라면 할 수 있어!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기
-딸의 메모-
너도 잘하고 싶었던 건데
기다리지 못했네.
나도 누가 시키면 더 하기 싫은데
딸은 오죽할까.
당분간 잔소리 금지.
딸 한번 더 웃게 해 주기.
사과 빨리 하기.
내가 더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줘야겠다.
이럴 때마다 나도 당황스럽다. 내 진짜 본연의 모습이 나와버린다. 딸 앞에서 더 차분하고 교양 있게 말하고 싶은데 책 보고 글 쓰는 수양이 무너졌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온갖 말이 감정 따라 튀어나온다. 순간을 절제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길. 내가 더 공부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