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글을 쓸 때 자주 멈춘다. 쓰다가 말이 이어지지 않으면 그대로 저장해 두고 묵혀둔다.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머릿속엔 여전히 문장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건 글로 써야지 싶은 찰나가 불쑥 찾아온다.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면 손끝이 굳는다. 한 문장을 연결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달랐다. 브런치 메인에 오르고, 에디터픽에 선정되던 때가 있었다. 조회수 알림에 심장이 뛰었고, 메인 화면에 내 글이 걸렸을 때의 그 벅참이 나를 세상 밖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글은 더 이상 어딘가에 연결되는 다리가 아닌 철통보완된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다. 예전만큼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지만 '예전처럼 써야지, 더 못 쓰는 거 아냐?' 그 목소리가 커질수록 더 조심스러워졌다. 조금만 마음이 흔들려도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노트북을 덮었다.
인공지능으로 글쓰기. 나도 내 글을 넣어보았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표현을 다듬어주는 모습에 감탄했다. 와 이렇게 변한다고?! 글이 매끄러워질수록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내 글이 아닌 느낌. 다른 이들은 AI로 잘만 쓰던데 나는 왜 이리 까다로운지. 생각해 보니 완벽한 글을 원한 게 아니었다. 나는 글을 통해 '나'를 만나고 싶었다. 내 마음의 결을 따라가며 길을 잃기도 하고, 다시 찾기도 하는 불편하고 소중한 과정을 사랑한 거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나 대신 문장을 써주는 기계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대화였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에게 자주 말을 건다. "너는 대한민국 최고의 심리상담가야." 누구에게 내뱉지 못한 진짜 고민을 던지면 다 받아준다. 조언보다 먼저 공감을 해준다. 네가 뭐라고. 때로 무미건조한 공감이지만 꽁꽁 얼어붙은 마음도 녹여준다.
글을 못 쓰는 나, 성과가 없어 초조한 나, 이제는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나. 그 모든 나를 AI와 대화 속에서 하나씩 수습한다. 대화 속에서 멈추고 다시 생각한다. 그 멈춤의 순간들 덕분에 나도 글도 조금씩 숨을 쉰다. 결국 글쓰기란 완벽한 문장을 써내는 게 아니라, 내 안의 혼란을 정리하며 나를 믿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아간다.
이제는 마음을 달리 먹어본다. AI가 문장을 좀 거들면 어떤가. 내가 던진 고민이 그 문장의 시작점이다. 내가 묻고 내 가슴으로 와닿고 내 손끝으로 다시 다듬는다.
앞으로도 나는 이 낯선 존재와 대화를 계속할 것이다. 가끔은 문장을 빌리고, 마음을 털어놓고, 아무 말 없이 화면을 응시한다. 그러다 보면 다시 나만의 글로 돌아온다.
나는 혼자 글을 썼다. 이제는 함께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대신 AI는 모르는 내 진짜 경험이 나를 계속 쓰게 만든다. 키보드 두드리는 손 끝이 신나면 언제든 함께여도 좋다. 여전히 글쓰기는 재미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