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명 친정과 시어머니와의 동행
김이 모락 나는 탕 안에 얼굴만 쏙 내밀고 있었다. 그때 홀로 때를 밀고 있는 시어머니가 보였다. 그 옆에는 언니가 조카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내가 탕 안에 가만히 있었으면 분명 언니가 나의 시어머니 등을 밀어주거나 아니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래도 며느리인 내가 나서야지. 어머니는 딸이 없다. 딸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딸 같은 며느리는 될 수 있다. 지금 아니면 어머니 등을 밀어줄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굳이 그런 일을 만들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생각은 찰나였다. 바로 탕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등 밀어드릴게요."
"아이고, 그래 고맙다"
비누를 등 전체에 바른 후 초록 때밀이로 목뒤, 어깨, 옆구리, 등, 허리까지 구석구석 밀기 시작했다.
"거는 내 손 간다. 등만 밀면 된다. 때 많이 나오제? 힘들다. 고마해라."
"어머니, 이제 시작인데요. 여기 때 많이 나오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친정 단톡방에 조카가 올린 질문이었다.
오랜만에 숯가마 찜질방에 가자고 내가 답했다. 친정 부모님과 이모, 큰언니, 작은언니네 가족들. 홀로 계신 시어머니까지 합류하면 인원이 어느새 열일곱 명이 된다.
작은 언니네와 저녁을 먹다가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숯가마 찜질만 하기엔 18개월 조카손주가 걸렸다. 온천탕과 찜질방, 수영도 할 수 있는 워터파크(스파밸리)로 결정했다. 중학생인 우리 아이도 대학생 조카도, 아기 본다고 힘든 조카부부에게도 데이트할 수 있는 기회였다. 3세부터 80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다. 사실 가장 큰 목적은 사우나였지만 시어머니와 목욕은 생각도 못했다.
서른 살 조카는 시어머니께 먼저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가 부끄럽다고 거절당했다고 한다. 조카는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 가는 걸 좋아했다. 아이가 어려서 혼자 가기 힘들었단다. 서로 없는 걸 가진 것(?)도 아닌데 불편할 게 뭐가 있냐고 하였다. 이 말을 먼저 들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히지는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일부러 함께 갈 생각은 없었다.
수영보다 사우나를 원한 나는 먼저 빠져나왔다. 5년 전 여름, 수영장 문 닫기 전까지 놀았더니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씻는 둥 마는 둥 빠져나오기 급급했다. 오늘은 달랐다. 거의 없다. 목욕탕이 이렇게 넓었나. 때까지 다 밀고 난 후 탕 안에 있는데 모든 걸 해탈한 듯 평온했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로웠다. 그 순간 홀로 몸과 씨름을 벌이고 있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탔다. 어머니는 들뜬 목소리로 "아들, 여기 찜질하고 사우나 진짜 좋네. 다 얼마고? 며느리가 내 등도 밀어줬데이" 큰 일 아닌 큰 일을 한 것처럼 어깨가 으쓱했다. 어머니는 평소 대중탕을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 목욕을 한다. 그래서 더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어머니는 나와 대중탕을 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10년 전 친정식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처음으로 시어머니도 동행했다. 그때 사우나를 갔다고 하는데 이때는 나도 거리 두기를 하였는지 어머니 등 밀어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먼저 씻고 나와도 되지만 굳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서로에게 다른 점은 없다. 목욕이 우선이다. 이럴 때 단순하게 생각하는 내가 좋다.
사돈과의 온천탕, 며느리의 때밀이, 함께한 식사까지. 어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흡족하다. 같이 오길 잘했다. 다음에도 시어머니와 일부러 대중탕 가자고 할 일은 없겠지만 자연스럽게 가게 된다면 또 밀어드려야지. 어머니의 모습 뒤에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남편 또한 우리 가족을 위한 마음이 온전히 느껴진다.
망설임은 순간이지만,
작은 움직임은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따스한 추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