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직장에서 창고에 바구니에 든 홍시를 발견했다. 실장님이 차가운 곳에 보관하려고 넣어둔 건데 깜박한 듯 보였다. 멀쩡한 건 거의 없고 쭈글하고 하얀 곰팡이도 피어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실장님이 집에서 가져온 홍시를 같이 나눠먹었다. 아침에 창고에서 본 홍시는 까맣게 잊고 실장님이 건네준 홍시 반쪽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먹었다.
다음 날 뭔가 이상한 기운이 들었다. 속이 불편했다. 배가 부글거렸다.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야 할 상황이 몇 번 있었다. 구토도 했다. 위아래로 번갈아가며 분출했다. 이 날은 하루 종일 먹지 않았다. 탈수 올까 봐 따뜻한 물을 보충하고 속이 안 좋아 위장약을 먹었다. 몸까지 으슬하다. 퇴근 후 집으로 오니 만사가 귀찮았다. 몸이 축나 힘도 없어 일찍 누웠다. 10킬로미터를 뛰어도 멀쩡했던 다리까지 저려왔다. 내일 이면 괜찮아야 할 텐데라며 잠을 청했다. 다행히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몸은 좀 나아졌다. 출근하니 실장님도 어제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몸이 아프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속이 편해지니 그제야 살만하다 싶었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나도 모르게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제 와 누군가 내게 행복이 뭐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불행이 없는 상태"
행복이란 짜릿함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편안함과 안도감. 안정감과 잔잔함. 깊은 밤 고민 없이 잠들 수 있는 감사함 또한 우린 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기에.
281p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일주일 지났다. 오늘 독서모임에 선정된 책을 읽고 있었다. 문득 지난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몸이 편하기만을 기다린 내 모습이 생각났다. 덕분에(?) 2킬로그램이 빠졌다.
그때도 몸은 불편했지만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 큰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았고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 뒤로 음식 먹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본능적인 식욕과 몸무게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몸이 편해지니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생각의 꼬리가 멈춰지지 않는다. 독서모임으로 하루 종일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책만 읽었다. 발표할 문장을 뽑고 왜 이문장이 내게 와닿았는지 정리하였다. 평소 일할 때는 하루 종일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던 시간이 주어졌는데 반나절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책도 읽었지만 다른 생각으로도 가득했던 시간.
몸이 아플 때는 속만 편해지기를 기다렸다.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더니 잡생각이 일어났다. 저녁에 독서모임이 끝나고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한 것 같아 다시 마음이 평온해졌다.
행복이란 같은 마음이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닌가 보다. 아프고 회복되고 생각으로 찼다가 끝냈을 때의 후련함. 어른의 행복은 아무 일도 없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변동이 일어나는 걸 알아차리는 것. 소란스러움까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는 게 아닐까. 자기 전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 행복하다.
어른의 글쓰기는 조용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