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총회, 고등 엄마가 되어간다

by 햇님이반짝

"이러니 대한민국에서 아이 키우기 힘들다 소리가 절로 나오지." 교문을 나오는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가 짠해서 울컥하다가 이렇게 정해놓은 교육에 화가 났다가 상위권만 해당되겠지라고 했다가 그래도 잘 적응해야지라고도 했다.



필 휴무날 학부모총회다. 출근하면 핑계라도 댈 텐데 빼도 박도 못한다. 갈 마음 없었는데 큰딸이 가라고 했다. 내 통장에서 영어, 수학 학원비가 나간다. 이것만 해도 어디야. 결국 공부는 아이가 열심히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고등입학 후 이주가 지났다. 나는 이제 고등 엄마다. 고등 엄마. 이 단어만으로도 어깨가 묵직하다. 야간자율학습으로 저녁도 같이 안 먹는다. 첫 번째 충격(?)이었다. 중3 때도 주말에 학원을 갔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왕 학부모총회 가는 거 하나라도 잘 들어야지. 강당에서 모인다. 눈이 침침해 앞으로 앞으로 가다 보니 두 번째 의자 정중앙에 앉았다. 앞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 그냥 첫 줄이다. 누가 보면 열혈엄마인 줄 알겠다.


맞춤형 입시 전략에 대해 설명을 한다. 작년에 고교학점제에 대해 대충 듣기는 했다. 교과, 학종, 선택과목, 5등급, 수행평가, 세특, 최저, 공동교육정 등 줄임말도 몰랐던 부분도 자꾸 듣다 보니 귀에 들어온다. 나도 고등 엄마가 되어가는가 보다. 1,2등급은 누구 집 애 이름인가. 뒷자리에서 한숨을 쉬며 괜히 왔다는 말도 들린다.


또 급해졌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고1 때 진로까지 정하란다. 고2 때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나. 그 계기가 무엇인지만 확실히 적으란다. 고1, 2학년한테 인생을 떠맡기는 것 같다. 진로 정하는 게 쉽나.

5등급으로 바꿨으니 그렇게 알아. 최저 점수 맞춰야 되니 교과공부도 하고 수행평가, 내신, 학교 생활 구석구석 성실하게 다녀야 한다.

공동교육과정. 낯설다. 본교에 내가 원하는 선택과목이 없을 시 다른 학교에 가서 추가로 들어야 한다. 오후 자습이 마치면 6시다. 7시부터 9시까지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이것도 인기 과목에 몰리면 듣고 싶어도 못 듣는 경우가 생긴다. 2학년부터라 아직 숨 쉴 틈이 있다. 관심 없었던 나까지 신경이 쓰이니 아이만 바라보는 부모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학교에서, 교육에서, 나라에서 지켜줘야 할 것은 휴대폰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만 집중해도 힘든데 휴대폰과도 싸워야 한다. 진로만 빨리 정하라고 다그치고 정작 휴대폰은 풀어둔다. 올해부터 사용제한 정책이 있다는데 학교마다 다르다.

폰을 거두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단다. 공기계 등장. 진도 나가기 바빠서 필기할 시간이 없으니 텝으로 휴대폰으로 수업시간에 사진을 찍는다. 학교에서도 막는 분위기다.


학부모총회 가기 전날 아이와 실랑이가 있었다. 인스타를 해야겠단다. 능까지만 참으라고 미리 말해 두어서 한동안 조용했다. 교 동아리 정보가 인스타에 다 있단다. DM으로 모든 질문을 받는 동아리도 있다. 동아리는 생기부와 관련되어 있다. 아이는 이때다 싶어 자기 반에 혼자 인스타가 없다고 한다. 전화번호 몰라도 DM으로 연락한다고. 연락처 모르면 안 친한 거 아닌가?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중요한 고등학교에서 무너져야 하나.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에 대견하고 짠해서 순간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휴대폰은 못 믿겠다. 인스타는 더 그렇다. 발 들이는 순간 한 번은 더 보게 되어 있으니까. 이겨내야 할 유혹이 많다. 학교에서 나라에서 막아줬으면 좋겠다. 부모한테만 등 떠미는 교육 정책이 밉다. 공부 환경은 결국 가정에서의 몫이다.

학부모총회를 가면 담임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여자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싸움, 아이들을 의자에 앉게 하는 노력, 학급 분위기, 자기 주도공부가 중요하고 꾸준하게 자습을 이어가는 아이가 성취도가 높다, 생결(생리로 인한 결석)을 쓰는 태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데 믿음이 갔다. 아이도 선생님이 좋다고 해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학부모 총회를 다녀와서 속상하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남편이랑 사이좋게 지내기.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게 1번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게 만들어주고 싶다.


둘째, 맛있는 거 해주기. 사주기.

내일 아침은 뭐 먹어요? 끝나지 않는 매일 숙제다.


셋째, 공부도 체력이다.

야자 끝나고 돌아온 딸이 냉장고 문을 연다. 딸기 라테를 사겠다는 아이 말리고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갔다. 체중만 늘고 있는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없다.


넷째, 사랑하는 마음 전달하기.

둘째에게는 자주 표현하는데 첫째에게는 나도 모르게 딱딱하다. 마음은 아닌데. 안기만 하면 저리 가라고 해서 멋쩍다. 카톡으로 정보로 음식으로 표현해야겠다.


다섯째, 시간 정하기.

인스타 20분만 하겠다고 나에게 비밀번호 관리를 하란다. 이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지만 현명한 선택을 하고 싶다.



뒤통수가 서늘하다. 언니가 인스타 해야겠다는 말과 동시에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둘째야, 너는 더 안된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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