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모의고사날 딸 방청소를 해줬다.

by 햇님이반짝


내 방 왜 이리 더럽지?
어머니, 내 방 청소 좀 해줘요.


고마웠다.(별게 다 고맙다) 본인도 알고 있어서.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다. 작년 10월, 큰딸 방 청소를 해줬다. 생일 선물로.




오늘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첫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다. 궁금하고 궁금하다. 너의 점수가.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이미 거실 식탁 위에 점수가 적힌 시험지로 덮여 있었다. 딸은 당당하게 과목별로 점수를 부른다. 진담반 농담반으로 우리 자격증 공부할까? 물었다. 아이는 웃으며 이 정도면 잘했다고. 긍정적이다. 술에 배부르랴. 아닌데 중학교 범위인데. (말은) 괜찮다고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되니 파이팅 하자 했다.


이미 라면을 끓여 먹은 후였다. 수학학원 갈 준비를 한다. 괜히 뒤따라 딸방에 들어갔다. 헉, 왜 매번 봐도 적응이 안 되는지 본인도 방을 나서는데 어이가 없는가 보다. 가관이다. 바닥이 옷장인가. 오늘 입은 건지 어제 입은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언제 입은 운동복인지 한쪽 구석에 뒤집혀 널브러져 있다.


평소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최대한 아이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방이 지저분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다. 신경 쓰인다. 그냥 모르는 척할 뿐이다. 보고 있으면 천불 나니까. 웬만하면 화장실 갈 때 고개를 왼쪽으로 안 돌리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흘깃한다. 문도 안 닫힌다. 쓰고 던져 놓은 수건 때문에.




고등학교 입학하마자 오후 자습과 연이어 야간 자율학습지 한다. 야자 끝나면 학원을 가거나 스터디카페를 가는 날도 있다. 주말에도 학원과 스터디카페를 간다. 보는 내가 숨이 막혀 학원 하나 끊을까? 하니 싫단다.(아깝다.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학원은 두 군데 다닌다.)

시험 결과를 떠나 고등학교 들어가서 새로운 친구들과 학교 적응한다고 힘들었을 텐데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잘 다니는 딸이 측은하기도 기특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딸아이가 방청소 좀 해달라는 말에 평소처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큰딸방으로 향했다. 곳곳에 처박아놓은 과자봉지와 사탕껍데기, 옷장 겸 수납장 위 화장대는 사용하지 않는 쿠션과 빗에 엉켜 붙은 머리카락, 쓰다만 휴지로 어질러져 있었다.

책상 위도 만만치 않지만 방바닥이 시급하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리라 해도 절대 본인방에서 드라이를 한다. 청소도 안 할 거면서.

아이도 청소를 해야 된다는 건 알고는 있을 터다. 나도 옥상 올라가는 계단에 비밀 공간이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 정리하려고 벼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될지 막막하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손도 씻지 않고 거실에서 휴대폰 삼매경이다. '얼른 방에 들어가 보라고 네 방 치운다고 쓰레기를 얼마나 버렸는 줄 아냐'며 생색내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척, 무심한 듯 노트북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조금 뒤 아이는 방으로 들어간다. 첫마디가 궁금했다.

" 깨끗하네!" 됐다. 이 한마디면.

"며칠은 가겠지?" 내가 물었다.

"더 오래 유지해야지"라는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믿음은 안 가지만.




정리정돈된 방에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매일 청소를 해줄 수는 없다. 본인 방은 스스로 치워야 한다. 당연하게 해 주면 고마운 줄 모른다.


차라리 누가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되라고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부모 노릇하기 어렵다.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 누군가의 작은 손길 하나에 체증이 싹 내려가는 기분을. 오늘 내가 치운 것은 단순히 먼지 쌓인 아이의 방바닥이 아니라, 고등학교라는 낯선 세계에서 치열하게 버텨내느라 잔뜩 어질러진 아이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해 주면 고마운 줄 모른다며 경계하는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엄마다. 딸아이가 깨끗해진 방에서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작게나마 숨 쉴 틈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며칠 뒤면 다시 어질러질게 뻔하다. 그러면 또 모르는 척하다가 아이가 힘들어할 때쯤 슬그머니 치워줘야겠다. 엄마 노릇 정답은 없지만 정은 있으니까.





"어머니가 식모야? 언니방에 그만 좀 들어가." 오랜만에 깔끔해진 큰아이방이 낯설어 나도 모르게 자꾸 들어오게 된다. 둘째가 따라오며 말린다. 깨끗해진 언니 방이 질투 나는 걸까. 언니에게 향하는 측은함을 들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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