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이불을 널고 있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이불이 온몸으로 저항한다. 붙잡았다. 이불이 날아가지 않도록 빨래집게로 고정하는 순간 내가 진짜 잡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손꼽아 기다리는 평일 휴무날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산도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이 동네 저 동네 불어온다. 빨래 널기 참 좋은 날이다.
아침부터 세탁기가 열일한다. 오늘은 이불빨래다. 아이들 학교 간 사이 침대시트와 베개를 벗겼다.
둘째 아이 거 먼저 빨고 다음 큰 아이 이불을 돌렸다.
큰딸 이불을 널려고 하는데 마침 바람이 훅 불었다. 빨랫줄이 머리 위에 있어 손을 뻗어야 한다. 한 번에 널지 못해 안 그래도 힘든데 바람마저 부니 이쪽저쪽 손이 가야 한다. 이불마저 큰 딸을 닮았나.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힌다. 요동치는 몸부림에 빨래집게로 얼른 한쪽 구석을 고정하는 순간
'엄마 나 좀 잡아줘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 큰딸의 마음도 지금 이불처럼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진정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걸까.
친한 친구와 같은 동아리에 지원했는데 본인만 떨어졌다. 다른 곳을 지원했지만 또 떨어지고 결국 원하는데 들어가지 못했다. 2학년 때 본인이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위안을 삼지만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이라도 해주니 고마운데 남편은 처음부터 경쟁률 높은 곳 말고 안전한 곳으로 넣으라고 아빠가 말한 대로 하지 않았냐며 하였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엄마인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왜 얘기 안 하냐고 다그치지는 말아야지. 언제든 포근히 잠들 수 있는 자리는 마련해 줘야지.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도 하루 지나면 또 다른 가면을 쓴다. 전이 뒤집힌다. 다른 면이다. 덜 익은 내 모습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또 미웠다. 본인이 먹은 밥그릇 물도 안 부어놓고 그대로 싱크대에 덩그러니 놓았다. 다행인가 지난주는 먹은 그릇 아예 식탁 위에 놔두고 가버렸으니.
이게 뭐라고. 사사로운 거 하나하나 따지는 내가 야박하다 싶으면서 본인이 원하는 게 있을 때만 나를 부르는 모습에 마음이 철문으로 변한다. 기분에 따라 한결같지 못한 엄마가 된다. 그러고 보니 옆동네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갈피 못 잡는 이불이 나였던가.
둘째를 보고 있으면 공부가 다가 아닌데. 다른 길이 있는데 내가 집게로 못 날아가게 막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들고.
아이들 이불 세탁도 언제까지 해줄 수 있으려나. 둘째가 중2니까 최소 5년 길면 10년? 더 해주기는 싫은데. 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 하게 되면 지금의 고민은 또 아무것도 아니겠다. 이리저리 뒤집히는 이불처럼 아이들 마음도 열두 번은 더 바뀔 테니. 내 마음처럼.
날도 좋아졌으니 가끔 옥상에 빨래 널러 올라와야겠다. 빨래를 하고 깨끗해지고 이불은 따뜻하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서는 편히 쉴 수 있기를. 집에 오면 폭 껴안을 수 있는 이불속으로 엄마 품으로 들어오면 고마울 것 같다. 이제는 엄마 품이라고 적는 것도 낯설다. 큰아이는 잘 안기지도 않으니까.
아무리 전 날 언쟁이 있어도 다음 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아침 메뉴를 묻는 큰 딸. 엄마 속은 뒤집어도 뒤끝 없는 점은 배워야겠다. 내가 잡아야 할 것은 흔들리는 이불이 아닌 내 마음이다. 빨래집게의 용도가 새삼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