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역시 장비빨

글빨로 장착하고프다

by 햇님이반짝


며칠 전 원래 쓰고 있었던 블루투스 키보드가 고장이 났다. 불이 들어오지 않더니 아무리 키보드를 두드려도 휴대폰 화면은 묵묵부답 검은 점 하나 찍히지 않았다.

폰으로 적는 건 역시 한계가 있다. 톡톡 터치를 해보지만 두 명의 군사가 제 아무리 콩콩콩 뛰어봐도 열 명의 군사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만큼 따라가지 못한다. 거기다 혹여나 글감덩어리가 생각나 밖으로 와르르 쏟아질 지경에 이르기라도 한다면 내리막 길로 굴러오는 눈덩이에 깔리지 않도록 얼른 써 내려가야 한다. 두 명의 군사가 그걸 다 쳐내지 못해 기억이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해야 한다.




새로운 블루투스 키보드를 다시 장만했다. 이번엔 컴퓨터자판이랑 거의 흡사하다. 사실 그 전꺼는 폰이랑 선으로 연결해서 사용하여 휴대폰 충전을 겸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판 폭이 좁아 동시에 눌리기도 하고 쓰던 글이 날아가는 아찔한 상황도 가끔 있었다. 조심히 살살 달래어가며 적응하며 지냈는데 새로운 아이를 맞이하는 순간 그전 아이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이번건 다르다. 선에서의 자유로움. 거기다 친언니에게 받은 의자모양의 휴대폰거치대까지 환상의 조합이다. 참 별게다 흡족하다. 다들 원래 이렇게 쓰고 있었을 텐데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좀 많이 느린 셈이다. 하지만 새로운 걸 받아들일 때의 기쁨은 배로 와닿는다. 신세계를 접하고 있는 중이다. 노트북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현재는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가지려 한다.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만은 없는 요즘 즐거움은 글 한 편이 완성되는 산고의 고통(?)과 맞바꾸는 격이다.(비록 나는 의도와 상관없이 역아로 수술했지만 낳고 후가 더 고통임을) 뼈를 깎는 노력이 들어간다. 그만큼 쉽게 가질 수 없음을 격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초보작가는 동기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칫 쓰려는 마음에 작은 상처라도 난다면 이내 창을 닫아버리는 수가 있다. (지금 나에게 협박한 건가;) 그게 무엇이든 장비도 마음도 환경까지 완벽하더라도 결정적으로 글감이 생각나지 않으면 이내 다 소용이 없다. 그나마 세 가지 조건이라도 겨우 맞춰져야 좀 써볼까 한다.

여기까진 배부른 소리다. 정말 쓰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만 있다면 장비가 무슨 소용이며 시간이 있니 없니 하는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쓰겠다며 장비를 갖추니 얼마나 든든한지.



지금은 블루투스 키보드로 대신하지만 먼 미래에(?) 글 100개를 완성하고 계속 이어 갈수만 있다면 사과그림이 예쁘게 박힌 깔삼한 아이로 데려오고 싶다. 나의 모든 것과 함께할 수 있는 듬직한 아이로. 그때의 글쓰기는 장비빨과 더불어 술술 읽히는 글빨에 날개를 달아 자유를 만끽하는 날이 되길 손꼽아 기다려본다.









사진출처:햇님이반짝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