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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Jan 31. 2024

나의 첫 블랙리스트

적은 내부에 있었다


큰아이의 폰을 들고 조용히 둘째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메인에 떠 있는 내 글을 보여주었다. 신기한 듯 쳐다본다. 글을 읽어보더니 자기가 한 말은 없냐고 묻는다. 딱히 기억이 나질 않아 패스했다. 곧이어 큰딸방으로 갔다. 내 폰으로 보여주면 엄마폰이라서 뜬 거라고 하고도 남을 첫째이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물을 남기고 싶었다. 올해 중2가 되는 딸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요즘 외줄 타기 하듯 아슬하다. 이럴 때도 있었지라는 추억과 동시에 꽁기해서 폭로하는 글이 될 수도 있다.


어머니 글이 지금 조회수가 오천을 넘어가고 있어!


그것밖에 안돼?


머래~ 백넘기기도 힘든데


그렇구나. 더 열심히 해~그런데 블로그 말고 어디 글 올리는 거야? 아, 브런치 올리지?



이런, 그래도 관심이 있긴 한가 보네.


저녁쯤 조회수가 만이 넘었다. 냉큼 이 사실을 큰아이에 알렸다.


누가 모르고 잘못 클릭했는가 보네.


이런 냉철한 딸내미 같으니라고. 적은 내부에 있었다. 사춘기라고 다 이런 건 아닐 텐데 쥐어박고 싶을 만큼 말을 예쁘게 한다. 뇌를 스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 같다.






그 수업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


한 날은 큰 딸이 이런 망언을 한 적이 있다. 요즘 도무지 고운 말이 나오지 않는 딸이라 나로서도 삐딱서니로 들린다. 본인이 듣는 수업은 당연한 거고(그렇게라도 생각해 주면 다행) 내가 듣는 수업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어미는 일주일에 두 번 글쓰기 줌수업을 꼬박 듣고 있다. 걷기 운동은 못 가더라도 줌강의는  빠질 수 없다. 엄마도 배우고 싶은 게 있다.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수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다. 미래이자 꿈으로 연결되는 곳임을 끊임없이 쓰면서 알려주고 싶다. 계속 쓰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요즘이 참 좋다. 이런 모나는 질문조차도 글로 써낼 수 있으니. 글을 쓰지 않아도 시간은 잘만 흘러가는데 몇 문장이라도 붙들고 있는 순간이 다가오면 그날 밤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감싸주고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큰딸을 나의 첫 블랙리스트로 올린다. 안티도 팬이라고 언젠가는 찐 팬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망 없는 희망을 꿈꿔본다. 딸들에게는 현재 상황을 보고라도 하지 남편에게는 더더군다나 알려선 안 되는 기밀 같은 글들만 늘어나고 있다. 그냥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모르는 대로 묵묵히 그 자리에만 있어주길. 남편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일은 없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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