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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15. 2024

20년 지기 인생 동지


일요일 아침 화장실을 다녀와 몸무게를 쟀다. 거의 년만에 앞자리가 4로 바꿨다. 물 한잔에 다시 바뀔지언정 오랜만에 보는 숫자에 감격하며 인증까지 남겼다. 남편에게 이거 보라며 호들갑을 떨며 자랑했다. 남편도 요즘 걷기와 실내자전거를 타며 몸무게를 유지 중이었던 참이었다. 이에 질세라 체중계 위로 올라간다.

금이다. 그새 장난기가 발동한다. 슬며시 뒤에 쪼그리고 앉아 은밀한 작업에 들어간다. 중지하나면 된다. 남편이 발을 올리는 동시에 중계 뒷부분을 지그시 눌러 주었다. 일정한 힘을 유지해야 하는 신중함은 덤이다. 84.5가 찍혔다. 평소보다 2킬로가 올라. 화들짝 놀란다. 고개를 우뚱거리며 부정한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지만 이내 인정하는 눈치다.


아 어제 염통꼬지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깔깔깔 넘어갔다. 금방 눈치챌 줄 알았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수긍하는 모습에 혼자 배꼽 잡았다. 그러니 더 놀리고 싶어졌다. 


이상하네? 나는 왜 줄어들었지? 다시 한번 올라가 봐


신발장 앞 대리석 위로 체중계의 위치까지 옮기는 치밀함을 보인다(백날 옮겨봐라) 조심스럽게 두 발을 올린다. 재빨리 아까와 같은 동작을 취했다. 역시나 높게 나왔다. 만약 처음부터 3,  4킬로가 늘었다면 바로 들켰을지도 모른다. 남편 놀리는데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어제저녁 닭꼬치와 목살을 먹었더라도 갑자기 2킬로가 늘었는 게 심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덩치를 긴 원목의자에 벌러덩 누워 망연자실해 있다. 혹여나 운동해도 용없다며 자책할까 봐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더 올라가 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본연의 숫자를 보고 안정을 되찾았다. 이실직고와 함께.


몸무게로 한바탕 웃고 남편과 공원에 걸으러 나왔다. 아이들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일요일 아침이라 봐줬다. 아침부터 반팔만 입고 나와도 될 정도로 기온이 올랐다. 꽃도 예쁘지만 초록이 성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더 싱그럽게 다가왔다. 이 부러울 정도였다.


오빠~ 여기 예쁘지 않나?
하나도 안 예쁘다.
예쁘다 하고 들여다봐야 예쁘지. 사람이 왜 그리 부정적이야.
그런가 (요즘 수긍이 빠르다?)


그리고 남편이 하는 말.

우리도 걷다가 잠시 멈췄다 가자.


자주 오는 공원이라 걷기만 했다. 얼른 한 바퀴 돌고 집에 가서 쉬려는 생각이 강했다. 크게 한 바퀴를 돌았을 즈음 내가 먼저 었다 가자고 했다. 잠깐 숨만돌릴 거라 생각했는데 바로 앞 의자는 본체만체하고 오르막 쪽으로 간다. "어디가?" 그가 향한 곳은 등받이가 있는 자였다. 왜 측은해지는지. 


와 명당이다 명당. 서방 덕분에 좋은데 발견했네.

 

요즘 좀 착해졌다.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아주 작은 거라도 칭찬하려 노력 중이다. 여전히 욱할 때도 많지만.


집으로 가는 길,

앞서 뛰어가는 젊은 남자가 멈추었다. 권투 하는 시늉을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파이팅! 파이팅! 할 수 있어"

"아니야 이제 돌아 가자. 다 뛰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평일엔 걸어도 주말엔 뛰어야 " 겨우 따라오는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의 응원에 애써 끝까지 힘을 내본다. 건강하고 예뻐 보인다. 한 편의 청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그 모습이 흐뭇하게 보일만큼 적지 않은 나이임을 실감한다.




남편과 연예 때부터 함께 해온 지 20년이 되었다. 다가오는 19일이 결혼기념일이다. 크게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검색하는 남편이 고맙다. 마흔 중반에 가까운 어른 둘이 하하 호호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든다.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도 자기주장 내세우기 바쁠 때다. 뭐 하라고 시키면 '네'하면 감사할 지경이다. 늦게 하고 싶은 게 생겨  시간 사수하기 바빴다. 집안일 등한시하고 일하랴 글 쓰랴 남편에게 소홀했던 게 미안했다. 적극적인 지지는 아니더라도 알아도 관심 없는 척? 해 주는 게 더 고맙게 느껴진다. 누구보다 가정적인 남편이기에 마음이 쓰인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측은함과 끈끈함이 깊어진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20년 지기 인생동지에게 걷다가도 언제든지 쉴 수있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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