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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y 19. 2024

화장실에 폰을 안 들고 갔더니


일을 볼 때면 항상 손에 폰을 쥐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글을 쓰면 왠지 더 잘 써지는 것(?) 같기도 했다. 또 하나는 조금라도 더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다.  


아차, 거실에 폰을 두고 왔다. 중요한 용무 외엔 다른 할 일이 없다. 눈 둘 곳이 마땅치 않다. 괜히 두리번거리게 다. 이내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나중에 청소할 때 쓰려고 모아둔 다 쓴 샴푸통과 얼마 남지 않은 치약 꽁다리, 한번 더 문지르고 버리려고 했던 칫솔까지 보였다. 너저분했다. 매번 치워야지 하면서도 씻고 나오기 바빴다. 볼일 보고 나오면 그만이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눈에 가시가 되었다.


화장실은 손이 많이 가지만 방치하기도 쉬운 곳이다. 나와 우리 가족이 매일 사용하는 가장 깨끗해야 하는 공간이다. 휴대폰 보는 대신 손잡이에 메모지와 볼펜하나 걸어놔야겠다는 생각도 다. 전에 둘째에게 화장실에 휴대폰 들고 가지 마라고 한소리 들은 적이 있다. 굳이 더 오래 있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눌러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은 보다 못해 소매를 걷었다. 화장실 대청소다. 더 이상 아도 나오지 않는 샴푸통에 물을 넣어 흔들면 꽤나 많은 양의 거품이 나온다. 바닥에 뿌리고 문지른다. 보글보글 거품과 함께 묵은 때가 씻겨져 나온다. 남은 치약으로 구석구석 틈새도 닦는다. 허리가 끊어질 같지만 막상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화장실에 폰을 안 들고 갔더니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분도 눈에 꽂히고 노려보니 몸도 움직이게 되었다. 글감은 물론이고 바닥은 이내 아무런 물건도 두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에 세상 귀찮은 일이 막상 하고 나면 제일 후련하다. 진작에 정리할 걸, 화장실 가는 게 즐거워진다.


가족들에게 화장실 청소한다고 힘들었다는 생색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빠져나올지언정 일부러 더 큰소리를 내었다. 말 안 하면 모른다. 크게 티도 안 나지만 나만 뿌듯하다.


평소에도 수시로 보는 휴대폰 화장실 가는 시간만이라도 잠시 내려놓기로 다. 폰화면에 빠져드는 사이 진짜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만 할 수 있는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매일은 힘들지라도 의무적이라도 들고 가지 말아야겠다. 잠시라도 폰을 놓아두기만 해도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난다. 조용한 사색은 힘이 있어 나를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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