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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Jun 11. 2024

걷고 달리는 엄마의 시간


월요일부터 남 야근이다. 저녁 담당이 늦다고 하면 괜히 움찔하게 된다. 이내 무얼 해 먹나. 나는 밥과 김치만 있어도 되지만 한창 맛있는 거 먹고픈 성장기인  초6과 사춘기인 중2 두 딸과 같이 먹어야 한다. 계획은 되어있었다. 미리 월요일에 늦다는 언질을 주었기에 저녁거리를 두었다. 퇴근  후에 생각났다.


큰아이가 식빵을 굽는다. 달걀도 스크램블로 준비한다. 슬라이스 햄은 굳이 안 구워도 되는데 굽는다. 나 대신해주어서 기특하다. 그사이 나는 양상추를 씻고 방울토마토를 썰고 닭가슴살을 찢어놓는다. 소스라도 있어야 군말 없이 맛있게 먹어준다. 허전한 감이 지만 토스트 두 개를 먹으니 어느새 배가 불렀다. 그제야 하나만 먹을 걸 해봐야 소용없다.

아이들이 크니 좋은 점이 있다. 둘만 집에 두어도 된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엄마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한때는 샐러드마저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남았을 시간이었다. 이제는 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렇게 따라나서던 아이들은 어느새 같이 나가자고 사정해도 다도 안 본다. 늬들만 좋으냐 사실 내가 더 좋다. 거기다 오늘은 걷기 동무인 남편도 없다. 입꼬리야 나대지 말고 진정하자.



 

얼마 만에 혼자 나온 밤 산책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집 앞보다는 10차선 도로를 건너 더 넓은 공원으로 갔다. 걷기만은 아쉬웠다. 달리기 좋은 날이다. 이제 설정만 했다 하면 5km다. 해본 경험이 무섭다고 3km 뛰어도 될 텐데 손이 절로 5km를 누른다.


오랜만에 뛴 거 치고는 시작이 좋다. 기록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달렸다. 공원 한 바퀴를 크게 도니  3km가 지났다. 달리기 동호회 사람들도 있었다. 걷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여자 한 명과 빨간 민소매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앞에서 뛰고 있었다. 남자는 누가 봐도 달리기 마니아처럼 보인다. 성난 어깨와 다리 근육이 남달랐다. 나만 아는 강한 동지애를 느끼며 뒤를 이었다. 여성은 가볍게 제쳤다. 빨간 민소매 남성을 주시했다. 가까이 가기엔 거리도 있었고 은근히 오르막이다. 점점 뒤처지는 것 같았다. 무리하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했다. 넓은 평지길이 나오는데 왠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성속도가 잠시 주춤할 무렵 조용하고 은밀하게 뒤를 바짝 쫓았다. 숨이 지만 앞서 나가고 싶었다. 빨간 민소매 남성을 스쳐 지나갈 무렵 팔이 서늘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온몸으로 희열을 느꼈다. 내 체력도 꽤나 괜찮은 것 같았다. 마침 내리막 길이기도 하고 속도는 줄이지 않았다. 다시 평지로 돌아왔을 때 빨간 민소매 남성은 나를 의식했는지(?) 어느새 추월하고 다. 다시 따라붙기엔 이제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인지 저 멀리 앞서 나갔다. 좋은 승부였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한번 함께 뛰어보기를 다짐했다. 오늘은 여기 까지라며 남은 1km에 집중했다.   


공원 전체를 뛴 것은 처음이었다. 마무리는 늘 운동장으로 들어갔었다. 뛰다가 오르막을 피하기 위해서 평지만을 골라 달렸기에 새로운 뿌듯함을 경험했다. 아직도 숨 쉬는 방법이 서투르다. 완주 한 뒤에는 잠시 현기증이 나기도 했다. 의자에 누웠더니 땀이 눈 안으로 들어와 따가웠다.

충만한 기분 가득 안고서 운동장을 걸었다. 마무리는 런지자세(앞다리는 기역 뒷다리는 니은 모양이 나온다)한 발씩 내디뎠다.

이곳에서 걷고 달리며 근력운동까지 하니 헬스장 부럽지 않았다. 혼자 나왔지만 외롭지 않다. 나만 아는 경쟁도 하며 의지도 되었다. 엄마의 시간이 충족되니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고마웠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한 만큼 엄마도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건강한 에너지를 받았다. 충전된 마음으로 내일도 힘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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