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Jul 09. 2024

자식만 키운 게 아니었다

몸이 우선이다

병원 투어할 일이 생겼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약도 타야 하고 계속 가야지하고 벼르고 있던 자궁경부암검진도 해야 한다. 어제 둘째가 어금니 색이 갈색이라며 보여준다. 썩은 거 같다고 치과에 가야겠단다.




목요일은 휴무일이다. 브런치 글도 올려야 하고 그냥 자기 아쉬워서 날밤을 꼬박 새웠다. 예정대로라면 쉬는 날 아침 둘째 등교할 때 운동을 나갔을 텐데 잠도 안 자고 뛰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집 근처 큰 도로까지 나섰다가 다시 돌아왔다. 일단 자야 했다. 오전에 일찍 병원을 가려했으나 잠이 먼저였다. 내리 세 시간을 잤다. 더 자고 싶어서 다음 주로 미룰까라고 생각했지만 마음먹었을 때 가야 한다.


갑상선 약을 타기 위해 내과를 먼저 가기로 했다. 오후 진료를 보기로 했다. 내과는 두 시부터 진료를 보고 산부인과는 두시 반부터 오후진료시작이었다. 평소 타먹던 약이라 내과 진료는 금방 끝이 났다. 내과에서 2분만 걸어가면 산부인과다. 이십 분이나 일찍 왔다. 점심시간이라 에어컨도 꺼놨다. 원장님 성격만큼이나 깐깐하다. 두 시 반이 되니 칼같이 에어컨을 틀어준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공단검사로는 정확도가 낮으니 추가로 더할 건지 묻는다. 거리는 가까워도 마음은 천리길이다. 이왕 하는 김에 초음파도 보고 정밀검사도 받기로 했다. 바지와 속옷을 벗고 헐렁한 몸빼치마로 갈아입었다. 허전하다. 침대에 누워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한다. 배아래쪽 초음파를 보는 건 일도 아니다. 난이도 중에 최하다. 두 번째 질초음파도 불편하지만 견딜만하다. 그런데 꽤 오래 보는듯하다. 배가 아픈 적이 없는지 앞으로 임신 유무를 묻는다.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모양의 크기를 잰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난이도 최상이다. 아이 둘을 낳았지만 굴욕의자라 불리는 검사대는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양다리를 쩍벌로 올려 양발목이 고정되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되뇐다. 기구가 들어가고 고문의 시간 아니 검사를 시작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가 된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내려놔야 하는데 자꾸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뒤꿈치를 들지 마라고 누른다. 오늘따라 더 자세히 보는 듯하다. 스프레이로 약을 뿌리면서 따가울 수 있다고 한다. '마음대로 하세요' 따끔했다. 두 번 뿌린다고는 안 했는데 한번 더 뿌린단다. 또 따갑단다. '네 그러세요' 이미 영혼은 날아간 지 오래다. 다른 기구를 들었는가 보다. 소리는 크지만 아픈 건 아니라고 설명해 준다.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 내려가나요'라고 말 못 한다. 검사가 끝나면 어련히 내려주실라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먼저 일어난다. 검사가 끝나고 굴욕의자 아닌 진료의자는 엉덩이를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그제야 간호사도 내려오라고 한다. 무뚝뚝한 간호사도 이때만큼은 천사같이 느껴진다.




2019년도에 처음으로 이곳에서 진료를 받았다. 맞다. 그때도 혹이 있었다. 6개월 뒤에 내원하라 했는데 안이하게 여기고 3년 만에 찾았다. 이때도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오늘 2년 뒤 다시 확인하니 혹은 무럭무럭(?) 자라 2.3센티가 되었다.(자식만 키운 게 아니었다) 2년 동안 1센티가 자랐다. 5센티가 되면 수술을 고려해보자고 한다. 추후 관찰을 해야 되니 공단검진으로 2년에 한 번 오지 말고 내년에 내원하란다.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등한시되기 쉽다. 날 잡고 병원 가는 일이 번거롭고 마음도 내키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 내 몸 돌보는 거다. 몸이 우선이다. 내년에는 초음파만 해도 되겠지?라고 믿고 싶다.


굴욕의자에 앉는 건 몇 분이면 되지만 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귀차니즘으로 인생 굴욕은 당하지 않도록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몇 분의 민망으로 평생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작가의 이전글 라면 먹고 힘내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