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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펄블B Apr 19. 2016

나의 아주 사소한 일탈

Day trip to Toronto

딸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다. 그건 우리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단 한번도 혼자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반대하시기도 했지만 나도 굳이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여행이 그렇게 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나홀로 여행에 대한 은 언제나 존재했고, 그 로망은 토론토 당일치기라는 아주 사소한 일탈로 처음 이루어졌다.


내가 교환학생을 와 있는 워털루에서 토론토는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거리로, 대전과 서울 사이의 거리 쯤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래서 더 죄책감 없이 엄마한텐 가까운 미술관 간다고 하고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대전 출신인데 서울에서 학교 다니기 때문에...)


당일치기라지만 혼자 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라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날 워털루에서는 눈이 왔다는데 토론토는 날이 맑아서 들뜬 마음으로 casa loma를 향했다. (물론 춥긴 엄청나게 추웠다.)


날씨도 도와주는데도  길치인 나는 길을 잃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분명 난 구글맵을 따라 갔는데 구글맵이 나를 이상한 곳으로 인도한 거다. 왠 주택 개발 지구에 날 데려다 놓고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핸드폰을 뿌셔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아빠가 일평생 동안 몸소 가르쳐 주신, 여행지에서 길을 잃으면 물어보면 된다는 철칙이 있었다. 모여서 담배를 피며 낄낄거리고 있는 남정네 무리는 뭔가 불량해 보여서 패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내가 개를 무서워하니깐 패스, 그 짧은 시간에도 엄밀하게 심사를 해서 굉장히 선량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 께 길을 물었다. 그리고 나의 첫인상 심사는 정확했다!  길을 설명해주시다가 내가 못 알아듣는 눈치자 같이 가자고 선뜻 말씀하시면서 그 앞까지 데려다 주시는데 정말 감동ㅠㅜㅜ 오늘 여행은 시작이 좋아!!라는 느낌이랄까


 Casa loma는 토론토 대부호의 저택이었는데 대공황 때 그 사람이 쫄딱 망하면서 시에 압류되었다고 한다. 사실 오디오 가이드에서 이건 무슨 양식이고 저건 무슨 양식이라는 설명 하나하나 정말 열심히 들으면서 다녔는데 지금은 슬프게도 전혀 기억  안 난다. (머리가 나쁜 게 분명하다)  정원도 아니고 실내에 있는 유리 온실이 정말 예뻤다는 것과 공주풍으로 꾸며진 손님방에서 내 방 이렇게 꾸며달라고 하면 혼 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밖에 없다. 무조건 아름답게 꾸며서 주인의 자긍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은 저택이라는데 예뻤다는 것만 잘 기억하면 된 거지 뭐.



그리고 당일치기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AGO (Art Gallery of Ontario)로 향했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의 규모가 꽤 큰 미술관인데다가, 좋아하는 작품이 있으면 그 앞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보는 걸 좋아해서 하루만에 다 못 볼 줄 알았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4층을 막아놔서 시간 내에 다 볼 수는 있었다. 개인적으로 현대 미술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 층들은 대충대충 본 것도 거기에 기여했을 것이다.


AGO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J.M.W. Turner 특별전이었다. 그날 이름을 처음 들어본 화가라 특별전 티켓을 괜히 산건가 싶기도 했는데 작품을 보자마자 홀 아저씨 내 취향인데!!소리가 절로 나왔다. 빛 표현에 신경써서 그런가 뭔가 분위기가 따뜻한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 아저씨와는 나중에 뉴욕에서 재회를 하게 되는데...


그 외에도 나름 맘에 드는 작품들이 많아서 미술관 폐장 시간이 된 줄도 모르고 놀다가 security guard가 "Ma'am we are about to close the gallery."라는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casa loma에서 너무 사진을 많이 찍어서 그런가 AGO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서 내 핸드폰 배터리가 장렬하게 사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곧 미술관에서 버스 정류장까지의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였고 나는 패닉에 빠졌다. 시간이 애매해서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터라 위장은 배고프다고 난리를 쳤고 나는 길을 모르고...순간 이렇게 국제 미아가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 순간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이 불타올라 다시 한번 물어물어 버스 정류장을 찾았고 근처 맥도날드에서 무언가를 위에 넣어줄 수 있었다. 사람이 먹을 것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를 다시금 실감하며 내 자신에 자괴감을 느꼈지만 행복한 건 행복한 거였다.


하루 종일 잘 놀았던 데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점에서 내 자신을 무한히 칭찬해 주고 싶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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